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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그림들과는 다르게 성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하며 장엄하고 경건하며 엄숙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성화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바로 어제 감상했던 그림들처럼, 신비스런 느낌이 아니라 우리들 생활에서 보고 듣는 것처럼
일상같은 느낌의 성화도 있음을 실감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도 어제 그림의 작가인 헨드릭 헥터 지미라즈키(Henryk Hector Siemmiradzki, 폴란드, 1843-1902)의 그림과 또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네덜란드, 1632 ~ 1675)의 두 그림을 비교, 감상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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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한 지미라즈키의 그림과 글은 Wikipedia Art Renewal Center, Olga's Gallery,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그리고 베르메르의 그림과 글은 Essential Vermeer, About Vermeer Art, Art Renewal Center, Gallery for Vilhelm Hammershoi,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에서 영문을 발췌, 번역, 재정리한 것이므로, 더 궁금한 내용이나 이 두 화가의 또 다른 그림들을 더 감상하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예수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성화

  오늘의 성화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예수의 하루 일과 가운데 한 이야기를 화폭에 옮겨 놓은 작품입니다. 즉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이 아닌, 성경에 나오는 에피소드나 삽화 같은 "어느날의 이야기"를 상상하여 그림으로 그린 작품들입니다.

   보통의 다른 날처럼, 이 날도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을 돌아다니며 성경 이야기도 가르치고, 병자도 고쳐주며, 질문에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지나던 어느 한 촌에 들렀다가, 마르다란 여인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들어간 예수와 마리아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렇게 어느날의 우연에 불과한 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처럼, 일상을 그린 것이기에 이런 그림을 처음 보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역시 우연한 기회에 운좋게 만난 소중한 그림들입니다. 그것도 같은 사연을 두 화가가 각기 다른 시각과 느낌으로 화폭에 담아낸 두 그림이므로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아래 두 그림의 근거가 되는 내용은 성경책에서 그 구절을 찾을 수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66권이나 되는 그 많은 성경책 가운데, 예수가 태어난 이후에 쓰여진 것이며, 이는 "누가(Luke)"라는 예수의 제자가 쓴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다음의 짧은 네 구절이 그 내용의 전부지만 그 내용은 심오합니다.
 

     예수를 초대하고 영접한 마르다와 마리아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에게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것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 : 38 - 42)


         ▲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의 그리스도(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886. Oil on canvas. Th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2007 Siemiradzk


   먼저 위 그림의 작가부터 살펴보고 그림을 읽겠습니다. 지미라즈키는 이미 어제 "예수와 세 마리아"란 주제로 소개하였으므로 그 6 점의 작품과 함께 약력에 대한 설명도 함께 참고바랍니다. 그는 고전주의 양식을 고수했던 매우 학구적인 화가였습니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러시아(당시의 우크라이나)의 카르키프(Kharkov) 근처의  페케네지(Pechenegi)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이 지방에서 보냈습니다. 1864년에 카르키프대학 자연과학과를 졸업했으며, 1870년까지 성페터즈(Saint-Peters)시에 있는 순수예술(Fine Arts)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고전주의 양식을 고수했던 화가, 지미라즈키

   어렵게 일하는 가운데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적인 고전주의를 고수하면서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 후 1871년까지 뮌헨과 로마에서 유학하였으며, 실력을 인정받아 폴란드의 국립박물관과 모스크바의 국립역사박물관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맡아 전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모스크바의 교회(Cathedral of Christ the Saviour)에서 그의 프레스코 화법(fresco, 갓 바른 회벽 위에 수채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파리와 로마에서도 전시회를 가졌으며, 판매된 그림값을 국가에 기부했던 애국자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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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미라즈키의 초상화 ⓒ2007 Don Kurtz

   그러던 1902년에 로마에서 눈을 감았으며, 후에 옮겨져 지금은 그의 고향인 카르코프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림들이 그의 고향 박물관(Juliusz Słowacki theatre)에서 소장되어 있습니다.

   위 작품은 어제 감상한 그림들 가운데 하나이므로 많이 익숙할 것입니다. 그림의 풍경과 분위기는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두 주인공의 배경으로 배치된, 큰 나무의 그늘과 담쟁이 같은 덩쿨과 나뭇잎 사이로 투과하여 비추는 몇 조각의 햇살이 화면 가득 부드러움을 더해줍니다.

  특히 화폭의 어두운 부분인 왼편 윗쪽에, 물동이로 보이는 주방기구를 들고 서있는 '마르다'로 보이는 여인도 그림에서는 한가로워 보입니다. 앞 쪽 계단에서 인적이나 주변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야말로 부러울 정도로 평화롭게만 보입니다.


     낮은 채도와 어두운 명암으로 평화로움을 강조한 그림

   뒷 쪽의 정자나무 아래, 오른편 아래쪽으로 곱고 단아하게 자리잡은 하얀 장미도 그늘 속에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자리잡았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를 귀를 쫑끗 세우고 마리아와 함께 귀기울여 듣고있는 듯 보이며, 마리아의 다소곳한 자태만큼이나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주인공들의 뒷 편 배경을 아름드리 나무들로 배치시키고 짙푸른 녹음과 연회색으로 채색하여 화면 전체에 묵직한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편안한 기반을 분위기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무 그늘로 드리운 음지를 주 배경으로 사용하였고, 주인공을 제외한 화폭 아래와 주변을 더 어두운 그늘과 진회색을 사용하여 중앙의 예수와 마리아에게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주인공들의 뒷 편에서 예수를 향해 사선으로 쏟아지는 빛이 화폭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반면, 그 외의 모든 배경과 주인공을 밝힌 빛은 나뭇잎 사이로 투과된 엷고 낮은 채광의 진하지 않은 명암이어서 화면 전체에 부드럽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전체적으로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매우 사실적이며 자연스럽습니다. 지미라즈키가 평생을 고수하며 지켜온 고전주의 화풍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며, 그래서 더 실재같고 사실적입니다.



              ▲ 그리스도와 마리아, 마르다(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664-5, Oil on Canvas, 63" x 56" (160 x 141 cm)
              ⓒ 2007 Vermeer



   이 그림의 작가는 앞에서 "빛 고운 그림
"으로도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란 그의 그림이 영화로도 제작, 국내 방송을 통해서도 소개되었습니다. 이 소녀 그림을 출판된 소설책의 겉표지에 인쇄, 홍보, 현재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으므로, 국내에도 상당히 많은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베르메르는 피카소(Pablo Ruiz Picasso, 스페인, 1881-1973)나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도 아니며 그보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7세기 북구 유럽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네덜란드의 사실주의 화풍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입니다.

    그가 사망한 뒤 잊혀졌다가, 19세기가 지나서야 작품에 대한 그 진가가 재발견된 화가입니다. 그가 남긴 "
버지널 앞의 여인(A Young Woman at a Virginal)"이란 제목의 그림이, 지난 2004년에 열린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3000만달러(약 345억원)에 팔렸을 정도이므로, 현재 그 명성은 가히 고흐 못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이미 많은 애호가를 확보한 베르메르

  베르메르는 1632년에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란 작은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165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직업을 계승하였으며, 1653년에는 델프트의 화가협회에도 등록하여 정식으로 활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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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100여 점 정도인데, 거의 소품들로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가정생활을 그린 것이 대부분입니다. 불과 10여 점이지만 풍경화도 전해지고 있으며, 몇 점의 초상화와 오늘 감상하는 그림처럼 종교를 주재로 한 종교그림들도 다수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그의 대부분의 그림들은 빛을 이용한 미묘한 색조(色調)가 아주 돋보이는 화풍을 보여줍니다. 위 그림에서도 세 주인공이 실내에서 담소를 나누는 정경을 담고 있는데, 그의 작품 대부분은 실내에서 생활하는 모습이나 풍속을 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 "The Procuress(1656)"란 제목의그림으로, 베르메르의 자화상으로 추정하며,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Vermeer 


     청, 황, 적 색채의 정밀한 조합으로 친밀감을 강조한 그림


   특히 붉은색, 짙은 초록색, 노란색의 정묘한 대비를 보여주는 그의 실내정경 그림들은 마치 비 개인 날 아침의 새벽 대기(大氣)를 생각나게 하며, 부드럽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맑고 깨끗한 빛과 은은한 색채를 조화시킴으로써, 조용한 정취를 불어넣었습니다.

   이렇게 베르메르는 청, 황, 적이란 세 색채의 정밀한 조합과 안정적인 배치로 온화하고 따듯한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세 주인공들이 서로가 자주 만나고 반기는, 이미 친밀한 관계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것 역시 베르메르 그림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실내로 들어오는 주된 빛의 근원은 항상 화폭 왼쪽 위에서 쏟아집니다. 그의 대부분 작품의 주된 배경이 실내이듯이, 위 그림의 배경도 실내여서 빛의 세기도 잔잔하며,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명암의 밝기도 전체적으로 낮고 어두운 편입니다.

  
이제 성경의 한 이야기에 동시에 주목했던 두 화가, 지미라크키와 베르메르의 위 두 작품을 비교, 다시 정리합니다. 두 화가는 분명 같은 내용을 읽고 각기 다른 상상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배경이 지미라즈키는 실외인 나무그늘 아래이며, 베르메르는 실내인 방 안으로 대조적이어서 특히 더 재미있습니다.

    대화를 더 좋아했던 예수의 마음까지 담아낸 그림 

   길 가던 예수가 한 촌에서 마르다란 여인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예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으며, 음식이 든 물건을 들고 있는 마르다는 예수께로 오거나, 무어라 묻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성경책에 있는 내용을 유추해 보면, 뒷 편으로 서 있는 마르다가 예수께 턱까지 괜 채 경청하는 마르아에게 일러 내 일을 도와주라고 부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차라리 음식은 한두 가지면 만족하니, 마리아가 내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고 경청하는 그 마음을 오히려 빼앗지 말라고 힘주어 말하는 장면입니다.

   
위 지미라즈키의 그림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부엌에서 일하던 언니 마르다가 주변과 그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친밀하게 이야기나누고 있는 예수와 마리아에게로 주방기구를 들고 다가옵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대접할 음식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입니다. 이런 마르다의 일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은 무척 다정하고 친밀해 보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성껏 준비하여 푸짐하게 마련한 음식을 싫어할 리 없습니다. 그러나 위의 성경 내용과 그림에서 반추해 볼 때, 그림의 예수는 푸짐하게 잘 차려진 음식으로 대접을 받는 것보다, 발 앞에 곱고 다소곳하게 앉아 경청하는 마리아처럼,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함께 이야기나누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더 좋아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예수가 의자에 편안하게 기댄 모습이나, 지미라즈키의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편하게 앉아 손짓까지 곁들여 얘기하는 것을 볼 때, 그림에 등장하는 세 사람 모두 격식 없는 참 편안한 사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방 일을 돕는 것이나 그렇지 않아도 좋다는 예수의 대화와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나눌 수 있던 상황들을 볼 때, 이 셋은 서로 알고 자주 보았던, 편안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상하는 독자로 하여금 보고만 있어도, 모두 미소짓게 만들고 즐거워지게 만드는 그림들입니다.
 오늘이 절기상으로 벌써 입춘이랍니다. 위 두 그림으로 따듯한 이야기가 더 그리워집니다. 좋은 하루보내시길~~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