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






   지구촌이 하나가 되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서양화 전시회도 많이 열리고 있고,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선조들의 그림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고, 감상하기도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그림들 가운데 서양화와는 다르게 동양화, 특히 한국화에는 우리 고유의 그림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친근한 정서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화면 가득 여러 소재들로 꽉 채워진 대부분의 서양화는 너무 답답한 느낌이 들고, 또 어렵다는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우리 그림이 주는 여백의 미를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림을 감상하면서 펼치게 되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작가의 감정을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고유의 정서와 문화 때문일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두 마리의 강아지 그림(쌍구자도), 견본채색, 국립 진주박물관 소장  
           ⓒ 이 암  



     동물이나 화초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화풍을 펼친 이암
   

   새해 명절이 코 앞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사임당의 안마당 풍경에 이어, 우리 그림을 두 번째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조선 초기의 화가, 이암(李巖, 1499-?)의 그림 가운데, 특히 잘 그렸던 동물 그림 6점을 함께 감상할 것입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 없으나,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고 그의 그림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아래 세 그림과 약력, 그리고 설명은 국립중앙박물관(http://www.museum.go.kr)과 호암미술관(http://www.hoammuseum.org), 한국회화사, 어린이미술관(http://gallerykids.com), 그리고 대천화랑(http://www.daechonnet.co.kr)을 참고, 종합하여 재정리한 것입니다.

   이암은 1499년(연산군5년)에 세종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의 증손으로 태어나 두성령에 제수된 왕족화가입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정중(靜仲)입니다. "인종실록(仁宗實錄)"에는 이암이 초상 그림에도 뛰어나 1545년 중종 어진(中宗御眞)을 그린 사람으로 이상좌와 함께 추천되었다고 전합니다.

   이암은 특히 개나 강아지, 고양이 등 털이 난 동물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개 그림을 비롯한 동물이나 화초(花草)그림에서 천진난만한 분위기와 한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런 이암의 화풍은 후세에까지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명성으로 이암의 그림 대부분은 일본에도 널리 알려져 소장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 때는 일본화가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어미개와 강아지 그림〈모견도(母犬圖)〉, 종이에 담채, 73x42.2cm,
                                                   국립중앙미술관 소장  ⓒ 이 암



   위 그림은 이암이 동물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한 낮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어미개는 긴 꼬리를 늘어트리고 의젓하게 엎드려 있습니다. 포근한 표정과 눈빛으로 어린 강아지를 보라보는 어미개와 그 등 위에서 편안하게 잠든 강아지의 모습, 그리고 어미젖을 먹기 위해 가슴을 파고드는 강아지의 천진스러운 모습이 정겹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몰골법을 통한 먹의 농담으로 평온한 분위기 묘사 

  배경으로 그려진 나무와  어미 개의 비례가 다소 맞지 않아 어색한 감이 있으나, 어미 개와 강아지 위로 드리운 나뭇가지와 잎새가 안정감을 더해주며, 주제를 돋보이게 합니다. 이암은 강아지의 얼굴에 안경을 씌운 것처럼 그려넣었습니다.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으로 음영과 채색의 농담을 이용하여 한 붓에 그려넣는 몰골법으로 부드럽게 표현하여, 평온하고 한가로운 느낌을 풍겨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리와 발, 특히 발가락 부분은 예리한 선으로 그려넣어, 몸통의 부드러운 털과는 대조를 이루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일가족으로 보이는 개와 강아지가 느긋하고 한가롭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어미 개의 목에 두른 목걸이가 요즈음에도 많이 쓰는 비슷한 모양이며, 무척 화려한 붉은 색을 채색하여 화면에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500년 전인 조선 초기에 저렇게 화려한 개 목걸이가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며, 우리가 얼마나 개를 사랑하는 민족인지 보여 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꽃과 새, 강아지 그림〈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 종이에 채색, 86x44.9cm,
                                                호암미술관 소장, ⓒ 이암


   위 그림도 역시 한국적인 동물의 세계를 펼친 이암의 유명한 작품입니다. 꽃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서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정취가 물씬 베어납니다. 나른한 오후,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가 꽃 그늘 아래 쉬고있는 표정과 모습이 천진스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암수 한 쌍으로 보이는 새 두 마리와 나비, 벌로 보이는 풀벌레의 고개짓, 날개짓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그림 전체에 약동하는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구륵법을 통한 채색으로 생동감 넘치게 묘사

  강아지 세 마리 가운데에서 검둥이는 물끄러미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고, 그 뒤에 있는 누렁이는 따뜻한 낮잠을 자는 듯 졸고 있으며, 앞쪽의 흰둥이는 풀벌레라도 잡았는지 입에 물고 발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꽃나무 위 가지에도 역시 한가로이 새 두 마리가 앉아 꽃향기를 맡으며 사랑을 나누는 듯 다정해 보이며, 이 새들은 날아오는 나비나 풀벌레와도 반갑게 인사나누는 듯, 매우 정겹고 한가로운 정경입니다.

   특히 이 그림은 강아지의 천진스러운 눈 빛이나 안정된 구도, 새와 나비, 풀벌레의 움직임을 통하여 그림에 생동하는 활력을 불어넣었고,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을 더해 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잘 어울어져 있어 조화롭고 안정적인 정취를 한가득 선물합니다.

   또한 강아지의 표정은 역시 먹의 농담을 이용한 몰골법으로 부드럽게 표현한 반면, 뒷 배경의 꽃나무는 그 윤곽을 가늘고 엷은 쌍선(雙線)으로 그렸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를 먹의 농담이나 채색으로 색칠하는 구륵법을 써서 잎새와 나무줄기 하나하나를 세세하고 정밀하게 묘사하였으며, 이로써 화폭에 살아있는 듯한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꽃과 새, 고양이, 강아지 그림〈화조묘구도(花鳥猫狗圖)〉, 87×44Cm, 평양박물관
      ⓒ 이 암
 


   위 그림은 서로 대칭을 이루는 두 폭으로 마치 병풍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폭이 서로 비슷한 정경과 구도로 유사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꽃과 새의 생생한 묘사로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생기가 넘쳐납니다. 새들은 모두 짝을 이룬 두 쌍이며, 몸짓이 너무도 다정하여 화사한 꽃송이들의 축하를 받는 듯합니다. 아래 강아지와 고양이의 모습이 뒷 배경의 꽃들과 한 화폭 속에 어우러져 화사한 봄 날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자아냅니다.

     화폭 가득, 생동감 넘치는 정겨운 분위기가 압권 

   왼 편의 큰 송이의 붉은 꽃은 실물보다 과장하여 크게 그려졌습니다. 이 화려한 꽃이 주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동심어린 고양이, 강아지, 새들과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된 듯 보입니다. 그 모습과 표정이 매우 솔직하고 사실적이면서도 천진스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왼 쪽 그림의 고양이는 새라도 잡으려는 듯, 익살스런 표정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나무를 타고 있는 고양이가 부러운 듯, 그 아래 고양이를 올려다보고 있는 강아지의 표정도 그렇습니다. 새라도 잡았는지 깃털 하나를 입에 물고 있는 왼 쪽 앞 강아지의 위풍당당한 표정도 그렇고, 다투는 듯 휘둥그런 눈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오른쪽 그림의 고양이와 강아지의 모습도 참 재미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인 강아지와 고양이의 표정은 역시 묵의 농담을 이용한 구륵법으로 부드럽게 묘사되었으며, 뒷 배경으로 배치된 꽃과 잎새, 나무줄기, 그리고 새의 움직임과 표정은 붓의 채색과 연필을 이용한 몰골법으로 하나하나 정밀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꽃의 화려함과 새와 고양이, 강아지의 움직임이 생생하여 활력과 생기가 넘쳐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꽃과 새, 강아지 그림〈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  일본 민예관소장
              ⓒ 이 암
 


     세밀한 관찰력으로 평온한 동심의 세계를 묘사 

   지금까지 감상한 여섯 그림 모두 평화롭고 정감이 넘칩니다. 강아지의 표정에 똑같은 구륵법을 사용하였으며, 꽃과 나무의 묘사도 몰골법을 사용하여 한결같이 정밀합니다. 또한 강아지가 여섯 그림모두에 등장하는데, 이암의 다른 그림들에도 똑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암이 평소에 이 강아지들을 곁에 가까이 두고 애정을 갖고 관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각 강아지들의 털 색깔뿐만 아니라 그 움직임이나 생김새와 성격에서도 각각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주변의 바위들도 모두 조선 초기의 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선점준으로 처리되었습니다. 배경의 꽃나무에는 새와 나비, 풀벌레의 표정까지 살아있는 듯, 매우 생생하고 다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런 점은 이암이 동물그림은 물론 꽃과 새그림의 묘사에도 뛰어난 화가였음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증거입니다.

   이처럼 이암의 그림은 천진하고 귀여운 표정의 고양이나 강아지의 모습을 통하여 일상의 정감과 동심까지 담아냈습니다. 이암의 독특한 화풍은 독자(관객)를 단숨에 한적하고 여유로운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여백의 미를 통해 여유와 평화를 선물

   이런 힘은 이암의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입니다. 화면 전체적으로 볼 때, 논리성과 완벽성은 떨어질 수 있으나, 그의 그림은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여유를 갖게 만듭니다. 관객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들며, 동심어린 정취에 한껏 젖어들게 합니다.

   이렇듯, 이암의 그림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런 여유로움의 미학과 평화로운 분위기로의 여행은 그의 그림이 주는 선물입니다. 오늘 감상한 이암의 그림이 보여준 이런 평온한 정서는 우리 그림만이 가지는 여백의 미에서 유래합니다.

   이런 점은 그의 그림이 좋아지는 이유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 그림들을 더 가까이 하고 더 자주 만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숨가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문화의 힘이며, 지키고 되새겨야할 우리의 가치일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서양화와는 달리, 이암의 그림들을 통하여, 우리 고유의 여유로움의 미학과 서정 깊은 풍습, 그리고 해학이 깃든 우리 선조들의 삶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또한 이암이 전하는 멋스러움과 그 영혼의 목소리를 통하여 나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그래서 생각 더 깊어지며, 마음 더 여유로워지는 날입니다.


     계획은 있으나 설 전에 글을 하나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관심 갖고 함께 생각나눠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소망을 이루는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믹시추적버튼-이 블로그의 인기글을 실시간 추적중입니다.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