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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으로 우리가 "성화(聖畵, holy(religious) picture)"라고 말하는 그림들의 대부분은 그 느낌이나 분위기가 경건하고 신비하며 엄숙하고 장엄합니다.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종교와 관련한 대부분의 그림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그림을 감상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하고 경건해지며 자신의 모습과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느낍니다.

  기독교와 관련한 성화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틀 전에도 소개했던 지미라즈키(Henryk Hector Siemiradzki, 폴란드, 1843-1902)나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네덜란드, 1632 ~ 1675)의 그림처럼, 친숙한 일상을 담은 그림도 일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예수의 죽음이나 부활, 이적이나 병고침고 같은 신비한 이야기와 어제 소개한 "다윗과 우리아"의 이야기처럼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상상 속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실재로 불러낸 그림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예수의 일화나 비유에 관한 이야기처럼, 더러는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인 내용들도 종교그림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도 솔로몬의 이야기처럼, 널리 알려진 "탕자의 비유"를 주제로 한 교훈적인 이야기의 한 순간을 화폭에 담아낸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네덜란드, 1606-1669)의 그림입니다. 각 그림을 클릭하여 더 큰 그림으로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예수께서 장성하여 여러 마을을 돌며 모여든 자들과 함께 아마도 양지바른 곳에 모여앉아 담화를 나누던 한 때의 상황이며, 그 때 나눈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질문에 대답하던 예수가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기다리고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바다같은 마음을 비유로 쉽게 설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렘브란트의 그림과 약력, 그에 대한 설명은 브리태니커사전과 렘브란트 미술관(http://www.rembrandthuis.nl),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  ARC(http://www.artrenewal.org),  가톨릭마당(http://www.pauline.or.kr),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에서 도움을 받아 정리한 것입니다. 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그림의 배경이 되는 글은 66권의 많은 성경책 가운데 예수가 태어난 이후(61~63년)에 쓰여졌습니다. 사도바울의 동역자로서 의사출신이었던 누가(Luke)가 쓴 책(누가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인지 "마리아와 예수를 질투했던 마르다"의 짧은 글처럼, 아래의 글을 읽어만 봐도 마치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하고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내용이 매우 감성적입니다.


      ▲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 Russia

      ⓒ 2008 Rembrandt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믿음을 저버리며 방탕, 탕진했던 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버지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어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하건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11-32)
 


      바로크 시대의 성화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오늘의
그림을 완성해낸 화가, 렘브란트는 이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으므로 참고바랍니다. 그는 바로크 시대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1452-1519)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이 현재에도 전해지는데, 유화, 에칭, 소묘,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정물화 등 모든 종류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유화 약 600점, 에칭 300여 점, 소묘 천여 점 등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모든 작품에서 색이나 모양은 모두 빛으로 표현되었며, 명암이야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흐름이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종교적 정감과 인간심리의 깊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자화상(Self Portrait), 1659,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 2008 Rembrandt


   렘브란트는 1606년 7월 15일 조이트홀라드주 라이덴에서 제분업자(방앗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라이덴(Leiden)에 살던 화가, 야콥 반 스바넨부르크(Jacob van Swanenburch)에게 배웠고, 14세 때 라이덴 학교를 거쳐 암스테르담(Amsterdam)으로 나와서 라스트만(Pieter Lastman, 네덜란드, 1583~1633)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1624년 라이덴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독립하여 화실을 열었으며, 1632년까지 완전한 독학으로 친척, 이웃노인, 성경책에서 소재를 얻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결국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데, 1632년 암스테르담 의사조합으로부터 위촉받은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호평을 받아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였으며, 화가수련생을 비롯하여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 모두 일찍 죽게 되고 그의 화려한 생활로 인하여 파산선고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작품들이 거의 모두 경매에 넘어갔으며, 슬픔에 빠져 살다가 아들 디도(Titus)가 죽은 다음 해인 1669년,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렘브란트만큼 자화상(약 100점)을 많이 그린 화가도 없습니다. '모자를 쓰고 입을 벌린 자화상', '위엄있는 자화상' '바울 같은 자화상' 등 그가 직접 그린 초상화만을 감상하기에도 매우 다양하여 흥미로울 만큼, 평생 그의 그림에 열정을 다한 사람이었으며, 언제나 자신에게 겸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령 유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에칭만으로도 유럽 회화사상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에칭의 모든 기술은 렘브란트에 의해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엠마오의 그리스도(Christ at Emmaus, 1648)', '야곱의 축복', '유대인 신부(新婦, 유화)', '세 그루의 나무',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세 십자가(The Three Cross, 에칭)' 등이 있습니다.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1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2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렘브란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오늘의 그림들에서 자비에 관한 기독교적인 인식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바로크 시대의 모든 화가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분위기와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매우 사실적이며, 간소한 배경과 풍부한 빛, 색채, 매력적인 암시기법을 통하여 등장인물의 심리적 통찰과 영적인 인식을 독자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묘사하였습니다.

  실재적이지만, 암시기법을 통하여 심리적 상태까지 묘사

  위 두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와 방탕한 아들은 어둡게 채색된 다른 가족들에 비해 특히 더 밝은 빛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하였습니다. 오른쪽 앞에 할아버지로 보이는 서있는 사람의 황금빛 붉은 소맷자락이나 아버지의 주홍빛 망토를 두른 모습과 찢어져서 누더기가 된 아들의 색 바랜 옷, 발뒤꿈치까지 아예 다 닳아 없어져버린 신발을 대조시켜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줍니다.

  이렇듯 벗겨진 머리에 다 떨어진 신발과 맨발의 부랑자처럼 더럽고 추한 모습의 아들이 세상에서의 오랜 방황과 많은 경험, 변화를 겪은 끝에 결국은 따듯하고 풍요로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자기 몫으로 상속받았던 재산은 전부 다 허랑방탕, 허비한 채이며, 돼지우리에서 돼지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허기를 채우며 일하던 헐벗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이지만, 아들의 이런 과거와 잘못이나 실수, 그리고 지금의 추한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오랜 동안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과 깊은 사랑으로 문 앞에서 서둘러 맞이하고 다독여주고 있는 무척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뒤에 보이는 어머니의 시선과 오른 쪽 할아버지의 표정, 굳게 잡은 손과 고개 숙인 모습도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위 성경책의 내용으로 볼 때, 오른쪽 위에 배치된 형의 모습은 발을 꼰 채 그 위에 팔을 괴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으며, 그 얼굴 역시 무표정하고 매우 담담하게 그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동생을 바라보고 있는 자태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사뭇 못마땅해 보이며, 무척 대조적이어서 재미있습니다.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3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4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7 Rembrandt
 


  감상하시
는 바와 같이 이 두 그림은 어떤 격렬한 감동의 한 장면을 전체적으로 담아낸 폭 넓은 느낌의 그림은 아닙니다. 이는 렘브란트의 화가 인생 말년에 이전의 작품을 다듬고 재작업하여 완성시킨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온화한 아버지의 표정과 자태를 확대하여 깊이있게 묘사 

   마치 카메라를 줌인하여 확대해 잡은 사진처럼, 맨 위 첫 그림과 아래 마지막 그림의 일부를 정밀하게 묘사한 세부그림입니다. 아들의 허름한 모습과 아버지의 굵은 손등을 강조하여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독자에게 다시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아버지의 자태와 의상, 인물 표정으로 보아 특별한 신분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표정으로 보아 아들의 잘못이나 과거의 실수는 이미 잊은 듯 안중에도 없어 보이며, 아들이 돌아오기 훨씬 더 이전에 벌써 다 용서를 한 것 같은 자애롭고 푸근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들과 재회한 아버지의 그 기쁨이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은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제는 시간이 흐른 먼 훗날에도 더 이상 서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이 평화로움이 화폭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은 것은 아버지의 가슴에 폭 안긴 채, 완전히 기대어 참회하고 있는 죄인 같은 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게 허리를 구부려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어 그 느낌이 매우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5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위 그림들은 각각의 그림 밑에 각주를 달아 제목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바로 이 마지막 그림은 맨 위 첫 그림의 세부그림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앞의 다섯 그림과 비교하면, 작품의 완성 시기가 그보다 훨씬 앞선 7년 전에 그려진 것입니다.

     빛의 대조와 완벽한 색채의 조화를 화합해낸 그림들 

   그러므로 오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린 첫 그림이며 오늘 그림들의 실제 모태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그림들에 비하면, 화폭의 반 이상을 할애한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아버지와 방탕한 아들을 밝게 극대화시킴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들의 누더기 옷과 아버지의 소매 끝이 특히 생생하게 눈에 더 잘 띄며, 마치 그 황토 빛이 황금빛 올리브 색채인 것처럼 더 곱게 물들어 보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겉옷(망토)인 주홍빛과 이 황토빛 색채를 잘 화합하여 조화시켰습니다.

   또한 오랜 방황 끝에 파산하여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강조하였습니다. 너덜너덜한 겉옷은 물론, 얼룩지고 다 빠져 벗겨진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탕자의 현실과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그래서 단 한번 본 독자들에게 조차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색채의 조화(colouristic harmony)"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이렇듯 빛과 어둠을 대조시키고 색채의 미묘한 조화를 형성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특별한 사건임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렘브란트가 "빛의 마술사"임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신의 위엄이 화폭 가득

  기둥 뒤에 기대어 보일 듯 말 듯한 어머니의 가녀린 모습에서 위 그림들에 비해 자식에 대한 걱정과 궁금이 가득한 표정을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으며, 훨씬 인자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른 쪽에 앉아 있는 형의 모습도 아버지의 말씀과 사랑이 궁금한 듯, 또는 동생에 대한 원망도 감춘 듯, 다소 호기심어린 표정입니다.

  아버지의 얼굴 생김새는 선하고 근엄하며, 거칠어 보이는 팔 벌린 묵직한 양손과 완고한 인상의 나이에서 늘 한결같은 모습이 발견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곁에서 지지해주시는 산 같은 느낌의 위엄이 깊이있게 묻어나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신의 존재와 그 성격을 마음으로 느끼고 마치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앞의 그림들에 비해 전체적인 빛과 색조가 부드럽고 은은하며 어두운 편이이어서 훨씬 더 온화하고 따듯한 느낌을 줍니다. 렘브란트가 이 성경내용과 관련하여 그림을 그리고자 했을 때, 산 같이 높고, 바다같이 넓은 아버지의 품과 사랑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그리기 전 처음부터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렘브란트의 그림 5점을 감상하고 나니, 지금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의 품에 기댄 아들의 모습에서 제 자신과 우리의 실재 모습 그대로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고향이나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나약한 인간 존재를 상징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는 듯도 합니다.

   어리석고 지치고 욕심많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몹시 추한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쉴 수 있는 은신처를 찾은 듯 가슴 가득 자애로운 버거움이 전해집니다. 이 겨울 연말을 맞고있는 제 가슴에도 이 모든 것을 자애로운 미소로 늘 지켜보시는 신의 넓고 따듯한 품안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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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