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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올해도 열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지는 해를 정리하고 오는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마음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이 있습니다. 기다린다고 애타고 초조한 마음이었는데, 산타 할아버지께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소식 몇 가지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제가 받은 선물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다듬으며 주말을 맞고 있습니다.
 
        일상처럼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블로히의 종교그림 4점
   
   이제 닷 새 뒤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낮고 천한 자와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깊은 뜻을 기리며 축하하는 마음으로, 오래 전의 기사를 다듬고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은 칼 하인리히 블로히(Carl Heinrich Bloch, 덴마크, 1834-90)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한 종교그림 4점입니다.

   아래 블로히에 대한 약력과 그림에 대한 내용은 브리태니커사전, 두산백과사전과  Art Renewal Center(
http://www.artrenewal.org),  Olga's Gallery(http://www.abcgallery.com),  Wikipedia(http://en.wikipedia.org),  Carl Bloch Online Gallery(http://www.carlbloch.com/biography.html),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여 번역, 정리한 것입니다. 더 궁금한 내용이 있으신 분들은 직접 찾아가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궁전예배당의 종교그림에 정열을 다 쏟았던 화가, 블로히

    블로히(Carl Heinrich Bloch, 1834년, 5월 23일–1890년, 2월 22일)와 그의 그림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가이자, 동판화가이기도 했던 블로히는 덴마크의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태어났습니다.

   블로히의 부모는 아들은 그가 다른 훌륭한 직업을 갖기를 원했고, 블로히는 해군장교가 되길 원했으나, 그림에 대한 열정을 깨달은 뒤에 덴마크의 왕립예술원(Det Kongelige Danske Kunstakademi)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합니다. 1852년에는 그의 그림 한 점이 은상을 받았고 다음 해에 그 작품이 왕립예술원에 전시되면서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초기작품은 일상의 삶을 표현한 전원풍의 그림이었습니다. 또한 1859년에서 1866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살았는데, 이 때는 역사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던 중요한 시기입니다. 성공적인 그의 첫 전시회는 1865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해방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Unbound)"였습니다.

    ▲ 쿠르츠가 그린 블로히의 초상화
     ⓒ 2008  Don Kurtz

   코펜하겐대학 강당의 장식 일을 맡아하기도 했으며, 궁전예배당(Frederiksborg Palace Chapel)을 위한 23점의 연결 작품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그린 삽화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1865년과 1879년 사이에 그린 독창적인 원작이 이 궁전(Frederiksborg Palace)에 지금까지도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겨진 그의 그림들은 거의 대부분이 종교그림입니다. 그가 얼마나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애착을 갖고 상상하면서 그림을 완성해냈는지 알 수 있으며, 아래의 성경 내용과 그림에서도 그런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 그림들의 배경이 되는 성경의 이야기도 그림 앞에 덧붙여 실었으므로, 읽으면서 떠오르는 영상과 비교해 감상하시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가 전하는 예수의 잉태 소식을 받아들이는 마리아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자베스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2 : 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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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나심의 예고(The Annunciation), Oil on canvas, Public collection
           ⓒ 2007 Karl Heinrich Bloch


 
     엘리자베스 태중의 요한이 마리아 태중의 예수를 기쁨으로 맞이하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자베스에게 문안하니, 엘리자베스가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자베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누가복 음 1 : 39-45)


    엘리자베스를 통한 요한의 잉태소식을 믿지못했던 제사장, 사가랴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자베스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자베스가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자베스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누가복음 1 : 5 - 25)



      
         ▲ 마리아와 엘리자베스(Mary and Elizabeth), Oil on canvas, Public collection
         ⓒ 2008  Karl Heinrich Bloch
 


    같은 시기에 아들을 잉태한 두 여인의 대조적인 모습

  오늘 이야기의 주제와 위 두 그림에서의 주인공인 두 손 모아 앉아있는 다소곳한 마리아의 모습은 성스럽다거나 신비롭다기보다는, 소녀처럼 무척 단아하고 사랑스러워보입니다. 입고있는 옷감의 재질이나 색채의 질감이 고급스럽거나 귀족적이지는 않지만, 자태에서 풍기는 느낌은 우아하고 단정해보이며, 아직 미혼인 그녀의 표정과 분위기도 순수하고 애잔하며 애틋해 보입니다.

  그러나 위 첫 번째 그림에서의 마리아는 무척 놀라서 당황하고 있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믿지 못할 말에 어찌할 줄 몰라하며 두려워하는, 그녀의 순수한 표정이 잘 드러나있는 작품입니다. 눈부실 만큼 무척 밝은 빛의 천사에 비하면, 어두운 색채나 명암으로 묘사된 마리아는 상대적으로 어둠 속에 검게 배치시킴으로써, 대비시켜 강조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의 이야기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듯이, 마리아가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갑작스런 천사의 출현보다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몸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두렵고 황당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 천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리아에게 친절하게 설득합니다. 나이들고 늙어 임신을 못하는 친척, 엘리자베스도 이미 아들을 임신한 지 여섯 달이나 되었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내용과 보충 설명을 찾아 덧붙여 소개했습니다. 위 성경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볼 때, 예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 예언된 엘리자베스의 아들 요한과 당시 결혼도 하지않은 처녀(동정녀)였던 마리아를 통해 탄생한 예수의 잉태과정이 매우 흡사하고 닮아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자베스에게 잉태 소식을 전했던 천사도 모두 가브리엘이었으며, 또한 6개월의 시간차 외에는 그 사건의 시기도 비슷하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깊은 빛으로 절제시켜 기적같은 사건을 일상으로 승화한 그림

  두 번째인 아래 그림에서의 두 여인은, 서로의 잉태과정과 현재의 처지가 유사해서인지 동병상련의 애정과 반가움이 깃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두려움이 남아있는 듯,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의 마리아에 비하면, 무척 반갑게 맞아주는 엘리자베스의 표정은 무척 밝고 평안하고 너그러워보여서 무척 대조적입니다. 주변 여인들의 표정과 왼쪽에 놓은 두 화분의 모습도 밝고 생기있게 묘사되어 있어서, 위 그림과는 달리 아래 그림은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와 정취가 훈훈하며 따듯한 온기로 가득합니다.

  위 첫 번째 그림에서 보였던 마리아의 표정도 아래 그림에서는 다소 안정을 찾은 듯 밝아진 모습입니다. 처음 천사가 전하는 말에 무척 놀라고 당황했던 마리아도 이젠 숙명으로 받아들인 듯, 평안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마리아가 두르고 있는 의상의 붉고 푸른 색채의 화려함과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늘어트린 흰 천의 선명함을 대비시킴으로써, 이젠 평온해진 마리아의 심경과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그림 모두 기적같은 놀라운 사건을 다룬 그림이지만, 감정을 절제시켜 차분한 일상처럼 그려낸 작품입니다.


  다음은 한밤중에 들녘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게 한 천사가 나타나,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하는 장면과 그 얘기를 들은 목자들이 직접 마구간에 탄생해 있는 아기예수를 방문한 장면을 담고 있는 작품 두 점입니다. 아래 두 그림의 배경이 되는 성경 이야기도 앞붙여 실었으므로, 읽고 먼저 상상해보면서 그림을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천사로부터 직접 예수나심의 소식을 전해듣는 들녘의 목자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어라.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 : 1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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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녘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Shepherds Abiding in the Fields), Oil on canvas,
                 Pulic collection
             ⓒ 2008 Karl Heinrich Bloch 


      천사의 말을 믿고 마굿간의 아기 예수를 찾아간 목자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누가복음 2 : 14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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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의 탄생(The Birth of Christ), Oil on canvas, Public collection
    ⓒ 2008 Karl Heinrich Bloch


   위 블로히의 "들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두 그림 모두, 빛의 깊고 무거운 느낌을 화폭 가득 담아낸 작품입니다. 빛과 색채를 조합하여 인간내면의 깊이와 웅장함을 표현한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네덜란드, 1606-1669)나 밝은 빛으로 인간내면의 겸허함을 환기시킨 오라치오 젠틀레스키(Orazio Gentleschi, 이탈리아, 1563-1639)의 그림과는 또다른 빛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들입니다. 성경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당시의 호적명령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목자라는 직업에 대한 보충 설명을 덧붙입니다.

     고향에서 직접하는 호적신고제와 천한 직업이었던 목자들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린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는 B.C. 63년에 태어났으며, B.C. 27년(31년 설도 있다)에서 A.D. 14년까지 치리했던 로마 제국의 통치자입니다. 직접 호적을 신고하게 한 것은 로마의 중앙정부가 인두세를 받기 위해 인구 등록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이며, 이 일은 당시 로마 정부가 14년마다 정규적으로 실시했던 정책이었습니다. 지금의 인구조사는 정부에서 직접 집을 방문하여 파악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오히려 본인이 고향인 본적지를 직접 찾아가서 등록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위 그림에서, 한 밤에 천사가 전하는 말을 듣고있는 양 치던 목자들은, 당시에는 천한 직업으로 분류되었으며, 유대인의 규례(規例)에 의해서도 부정한 직업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귀족이나 특권층의 신분이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낮고 천한 서민이나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태어나셨고 그런 자들을 위해 나셨음을 암시하고 예언하는 대목입니다.

   또한, 위 두 번째 그림에서 한 가운데에 배치시킨 마리아의 표정이 더 돋보이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들, 예수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기적같은 현실을 경험했던 마리아가 또 한번의 기적을 실감하는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목자들의 갑작스런 방문과 예상 못했던 축하(경배)에 의아해하고 있는 표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짙고 부드러운 명암으로 예수의 서민적인 삶을 예언한 그림들

   이제 블로히의 위 네 작품 가운데 아래 두 작품을 살펴봅니다. 첫 번째의 위 그림을 보면, 한 밤중에 들녘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 양들 바로 옆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 어둠 가운데 불현듯, 밝은 광채를 발산하며 흰 옷 입은 천사가 나타났는데, 그 빛이 무척 밝다 못해 눈이 부셔서 목자들 모두 놀라고 어리둥절하여 무릎을 꿇거나 두 손을 모은 채, 귀를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밝은 빛에 드러난 짙푸른 하늘색 뒷 배경이 돋보이며,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예언의 장소를 가리키고 있는 듯 초롱입니다.

   두 번째의 그림을 살펴보면, 신생아실이 되어버린 마굿간의 어두운 정경이 소박하다 못해 천하다 싶을 만큼 정겹고 서민적입니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지팡이를 들고 찾아온 목자들의 옷차림과 그 색채도 남루하다 싶을 만큼 소박합니다. 또한 그들의 표정 역시도 기쁨에 차서 축하해주고 경배드리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천사의 말이 맞구나하고 확인하는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놀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탄생이라는 위엄과 권위가 충만한 그림입니다.

   아기 예수를 제외한 마굿간의 벽면과 배경 역시도 무척 어둡게 그려졌으며, 언뜻 보기에도 청결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두운 마구간 풍경에 비하면 마구간 입구로 보이는 오른쪽 뒷 배경의 하늘과 별빛이 상대적으로 매우 푸르고 밝게 채색되었으며, 그 별빛이 영롱하게 표현되어 아름답습니다.

   위 두 그림 모두에서 감상하고 살펴본 것처럼, 그 당시의 이 땅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복하고 환영하지는 못했으나, 하늘의 저 별 빛 하나는 축복하고 기뻐하는 듯 유난히 영롱하고 밝게 빛납니다. 목자들을 안내한 뒤, 미소짓고 있는 듯 침묵로 지켜보는 듯한 별빛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결코 화려해보이지 않는 그 청초함이 가슴에 오래오래 푸르름으로 남을 듯 합니다.

    이와 같이, 블로히의 그림에 나타나는 부드러운 붓질과 빛에 대한 짙고 어두운 명암은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를 세련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그림 전체에 번지는 푸른 빛과 주인공인 마리아가 입고 있는 옷의 붉은 색채는, 소박하지만 절제하며 흠없이 살았던 그녀의 성스러운 삶을 짐작하게 합니다. 더불어 무척 고민했을 마리아의 표정과 심경을 통하여 서민적인 우리네 삶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아기 예수의 삶과 그 의미를 되새겨보게 합니다.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