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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일 년 가운데 가장 큰 행사는, 보통 3-4월에 맞이하고 기념하는 "부활 절기"입니다. 이번 한 주가 바로 그 부활 절을 기다리고 마음과 행실을 정갈히 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금요일((4/10)이, 고난 주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고난(Passion) 주간

   다시 풀어 설명하면, 모친 마리아와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던 청년 예수가, 예루살렘의 "나사렛"이란 작은 동네에서 33살의 청년으로 장성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대로 유대인의 조롱을 받으며, 그 청년 예수가 십자가의 형틀 위에서 못박혀 돌아가시게 되는 그 과정, 곧 "십자가 위 예수의 수난(Passion)"을 기념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로 돌아오는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하여 의미있는 행사들을 성대하게 치룹니다. 그리스어()로 "파스카(Pascha)"라고 하는 부활절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축제일입니다. 그 정확한 날짜는 교파마다 다르고 교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지키고 있는 부활절은, 제 1 회 "세계교회회의"이며, 소아시아 비티니아주() 니케아에서 열렸던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춘분(:3월 21일경) 절기 후의 최초의 보름(만월) 다음에 오는 첫째 일요일을 특별히 정하여 기념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통 3월 22일부터 4월 26일까지 지켜지게 됩니다.

   부활절에는 주로 세례나 침례 의식, 참회자의 위로, 죄수의 석방, 가난한 자의 구제와 돌봄, 교역자의 위안 등 다채로운 나눔의 행사를 함께 합니다. 각 교회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이 부활절 전 40일 동안을 특별 기도 기간으로 정하고 새벽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또한 일요일과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에는 특별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도 "세속적 쾌락의 정원(Garden of Earthly Delights, 에덴동산)"이라는 그림을 소개하여 즐겁게 감상했던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네덜란드, 1450-1516) 또 다른 그림 4점을 고난주간에 즈음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가는 예수의 그림을 통하여 고난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감동으로 그려낸 "그리스도의 수난"

   오늘의 화가, 보쉬의 약력과 그림에 대한 소개는 "Art Renewal Center"와 "Web Gallery of Art",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그리고 "보쉬의 비밀(쾌락정원, Das Geheimnis des Hieronymus Bosch, 페터 뎀프 씀, 정지인 옮김, 2006, 생각의 나무)"에서 발췌하여 번역하고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하여 더 관심있는 분들을 자세하게 살펴보시고, 보쉬에 대한 내용도 앞에서 먼저 소개한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14-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네달란드의 화가 보쉬는 네덜란드 북부의 브라반트(Brabant)에 있는 "헤르토겐보쉬(Hertogenbosch)"란 작고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의 일생 동안을 이 곳 시골 마을에서 지냈으며, 화가였던 아버지의 화풍과 기법을 이어 받았고, 운이 좋게도 결혼하면서 문화적으로 더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정통파 가톨릭 교회의 교인이었으며 지방 종교협회의 회원이었으나, 그의 대부분의 개성있는 그림들은 17세기의 이단아(a heretic)로 알려졌을 정도로 매우 기괴합니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40여 점 정도되는 보쉬의 진품들은 정확한 연대나 날짜가 붙어있는 것이 없어 무척 아쉽지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Crucifixion)"나 "마술사(The Magician)"처럼, 그의 초기로 추정되는 작품들은 스케치와 구성, 그리고 화법에서도 미완성된 듯 다소 어색한 표현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초기의 작품들은 냉정하고 산문적인 배경을 통하여 악이나 죄, 육욕, 이단, 외설의 유혹과 같은 "인류(인간애)의 취약성이나 어리석음"을 드러냅니다. 그래도 심상의 표현은 여전히 비교적 전통적이며, 때로는 숨어있는 악마나 이상하게 잘 차려입은 마술사처럼 기괴한 표현이 침범해 있기도 합니다.

     15세기의 브뤠겔로 불리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앞에서 소개한 "세속적 쾌락의 정원"이나 "건초 마차(Haywain)"와 같은 보쉬의 중기 작품들은 파노라마 식의 3폭 그림입니다. 그 작품 속의 인물들은 다채롭고 창의력이 풍부하며, 화려하면서도 대단히 복잡합니다. 환상이 폭발한 것처럼, 대혼란의 종말이나 악몽의 상황을 예언한 풍경과 인류 최초의 순결한 전원 풍경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 중기의 작품들은 초기의 환상과 관념이 제대로 다듬어지고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쉬의 후기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며 무척 특이합니다. 규모도 파격적이며 인간 심리를 그려낸 초원이나 지옥의 풍경이 조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플랑드르 속담이나 문학, 비밀 문서에서 출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데, 반은 인간이며 반은 동물인 환상적인 창조물이나 악마가 자유롭게 산재합니다. 물론 "기도 중인 성자(St. Jerome in Prayer)"와 같은 평화롭고 근심 없는 작품들도 존재합니다.

   앞에서 "최초의 꽃그림"으로 소개한 적이 있는 브뤠겔(Jan the Elder Brueghel, 네덜란드, 1568-1625)이 실제로 보쉬의 영향을 받아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15세기의 브뤠겔"이라고 평가받기도 하며, 당대에 호소했던 그의 난폭하고 기괴한 환상은 에이크(Jan van Eyck, 네덜란드, 1395-1441)와 베이덴(Rogier van der Weyden, 벨기에, 1440-1464)의 영향을 받은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도 상징에 대한 연출이나 심리학적 심상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는 지속됩니다.

   그 시대에 보쉬의 명성은, 그가 죽은 뒤의 작품들은 스페인의 왕, 필립 2세(Philip II)가 열광적으로 수집했으며, 그의 생전에조차 모방자들이 나타났을 만큼 유명세를 누렸던 화가입니다. 환상의 혼돈과 기괴한 요소는 보쉬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만들었으며, 관객이 한번 본 강렬한 색채와 훌륭한 기법에서 우러나는 진품의 아름다움은 뇌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선 아래 그림들과 관련한 성경의 내용들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의 지은이는 예수의 12 사도 중의 하나이며 예수를 따르기 이전의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입니다. 이 복음서의 저작 연대는 주후 65-70년으로 추정되며, 마태가 유대인들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마태복음 27 : 27 - 37)



     ▲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 Oil on panel, 1480,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 Oil on panel, Palacio Real, Madrid, Spain



   우선 위 두 그림을 보면, 둘 다 보쉬의 작품이고 제목도 같지만 분명히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른 작품입니다. 먼저 구도를 보면,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위에서 내려다 보는 높은 시각으로 인하여 뒷 배경이 되는 공간, 즉 후경(後景)이 축소되어 버렸으며, 아래 첫 그림에서는 그 뒷 공간이 아예 배제되어 있습니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의 주요 주제와 화폭 안의 주인공들의 표정에 집중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극 중의 비탄에 빠진 주인공들의 긴장감을 훨씬 더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초상학 연구를 통한 보쉬의 돋보이는 상징적인 화법

   먼저 그리스도의 모습과 머리를 살펴 보면, 얼굴을 찡그린 병사들과 사악한 자들, 그리고 경멸할만한 자들과 같은 밀집한 군중을 배경으로 윤곽만 보입니다. 그의 발과 발목을 비롯하여 허리 등 세로로 매달게 될 나무로 만든 큰 못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통은 더욱 심화됩니다. 전경을 지배하는 그리스도는 무거운 십자가에 눌려 있고, 구레네(Cyrene)인 시몬은 등으로 쳐들어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군중들 속 예수의 왼 쪽에서 머리가 헝클어진 채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저 멀리 뒤 배경으로 비탄에 빠진 듯 보이는 여인은 복음주의자 요한의 품안에 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폭의 앞 쪽, 즉 전경(前景)을 보면, 선한 도둑이 성직자 앞에서 무릎을 꿇는 동안 병사들은 악한 절도범을 괴롭히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앞 쪽, 하품을 참는 것으로 보이는 성직자의 모습은 수동적인 반응인데, 이와는 달리, 입 벌린 옆모습을 한 채, 참회하는 선한 도둑의 극도에 달한 긴장감이 확연한 대조를 보임으로써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물론 시대착오적인 이런 성직자의 실체는, 당대의 작품제작 과정에서 보쉬가 증언했던 것처럼, 아마도 영감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의 1세기 후에 동일한 주제가, 브뤠겔이 그린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란 작품에서 다시 다양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보쉬가 그린 '십자가 위 예수의 수난'에 관한 "도상(圖像)학(iconography, 화상, 조상(彫像), 초상 등에 의한 주제의 상징적 제시법)"은 그의 작품 활동 중기와 후기 동안에 그려진 것이며, 초기의 작품들보다 더 단순해져서 보는 사람(관객)이 그들의 심성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자신의 무덤에 예수를 장사하는 요셉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인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미니 마리아와 도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저물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비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태복음 27 : 55 - 60)


     ▲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 Oil on panel, 1480,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 무덤 제공자와 함께 있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Crucifixion With A Donor), Oil on oak, 1480-1485, Musée Royal des Beaux-Arts, Antwerp, Belgium



   위의 첫 그림은 무척 특별하고 극적인 작품입니다. 대상에 바짝 밀접하여 주인공들의 머리로만으로 구성한 대담한 구도로, 1500년대의 예술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화풍입니다. 이런 경향은 일반적으로 보쉬 후기의 위대한 창작들에서 발견됩니다. 앞 면전경(前景) 왼 쪽에 폭동에 둘러싸여 있는 성스러운 여인(성 베로니카, St. Veronica)의 맑은 옆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였으며, 모서리 쪽, 그녀가 들고 있는 천에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얼굴 형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선과 악이 대조된 구속의 상징을 보여주는 보쉬의 복합적인 예술성

   선과 악의 대조적인 모습은 보쉬 인생의 기독교 신앙이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최고의 절정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세 번째인 위 첫 작품은 인간의 얼굴 표정과 악마의 얼굴을 비교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연구물입니다. 이 때까지 아직은 혼돈과 풍자적인 요소가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중앙에 있는 그리스도의 온화한 표정을 통하여 난폭한 대중들의 악마적인 표정과 대조시킴으로써 사건의 "평온"을 강조하고 있으며, 복합적인 조화와 평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고위층 사회에 '천재적인 인물'로 소개되었으며, 당대의 전통에서 탈피한 비범한 인물로 유명했던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위 맨 마지막 작품은, 15세기 "초상 연구(도상(圖像)학, iconography)의 전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손에 든 열쇠로 알 수 있는 베드로와 함께, 무릎 꿇은 무덤 제공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의 구원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 한 쪽 옆에서 요한은 위로의 눈빛으로 막달라 마리아로 보이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흰 셔츠의 상의에 갈색 조끼와 검은 망토를 입고 머리에는 검은 모자를 쓰고 있으며, 다리에는 검정과 빨강색의 줄무늬로 된 승마바지를 입었고 같은 색, 같은 줄무늬의 스타킹을 신고 있습니다. 그 망토 아래로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이 보이는데, 이런 옷차림으로 보아 15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지배자의 종이라는 낮은 신분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곱게 모은 손과 간절한 표정은, 그를 포함하여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지 독자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만듭니다.  

   또한 마지막 그림에서 멀리 뒷 배경으로는 예수가 사형죄란 누명으로 고문받고 희롱받던 도시(Brabant)의 그 장소도 그려져 있으며, 중간 쯤의 넓은 땅에는 누워있는 부러진 교수대와 '해골의 곳'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는 인간의 뼈들이나 까마귀들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왼편의 공장과 오른 편의 대저택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십자가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그의 희생이 인간세상의 구원을 가능하게 만든 사건임을 "구속의 상징"을 통하여 드러냅니다.


   이상으로 보쉬 작품에 대한 소개를 정리합니다. 그의 화풍은 인상적인 조화를, 그리스도 몸의 피부색채는 부드러움을, 그의 옷감은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색채를, 그리고 시골은 녹색의 완만한 농담을 사용함으로써 사건의 분위기와 심도높은 효과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보쉬 초기 작품의 구성(배치)에서 보면, 설화식의 화법이 발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그림에서 확인한 것처럼, 후기의 작품에서는 헌신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구경꾼(관객)들을 직접 바라보기 위해 체포자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그리스도에 집중, 조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세기에 활동했던 네덜란드의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보면, 종종 잔혹한 도구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그림에서가 아니라. 이미 그를 따랐던 12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이미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고문 도구들이 떠올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현대를 사는 예수의 제자들 역시 그림 감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멜 깁슨 감독이 제작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과 같은 고통스런 장면이 이미 스쳐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한 주는 역사 속의 부활을 상상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절제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