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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을 기념하는 "고난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제도 그림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네덜란드, 1450-1516)의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 1480)"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15세기의 브뤠겔(Jan the Elder Brueghel, 네덜란드, 1568-1625)이자,
상징적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보쉬의 그림들 가운데, 영감을 받아 제작된 그림이었습니다. 15세기 "초상 연구(도상(圖像)학, iconography, 화상, 조상(彫像), 초상 등에 의한 주제의 상징적 제시법)의 전통"을 완벽하게 재현하여, 선과 악이 대조된 구속의 상징을 잘 드러낸 작품이었습니다.

     카라바조의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매장"

   어제의 '그리스도의 고난'에 이어 오늘도 관련 그림 한 점을 더 소개하고 시기에 맞춰 함께 감상하려고 합니다. 초기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이탈리아, 1571-1610)의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The Entombment. 1602)이란 제목의 침통한 느낌이 드는 그림입니다.

   카라바조의 약력과 아래 그림에 대한 설명은,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인명사전(http://www.biography.com), ARC(http://www.artrenewal.com),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김상근 지음, 2005, 평단)",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여 번역, 종합, 정리한 것이므로,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바로크 미술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면, 이 앞의 글을 참조바랍니다.

▲ 카라바조의 자화상
ⓒ 2009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당시 전성기였던 르네상스(renaissance)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던 카라바조는 종교적 리얼리즘과 강한 명암의 대비를 바탕으로 인간 내면의 격정을 묘사합니다. 이런 카라바조의 시적 사실주의 화풍은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관객(독자)을 목격자로 승격시키는 회화의 혁명을 주도합니다.

   카라바조는 1571년, 이탈리아의 북부에 있는 밀라노(Milano) 근처 롬바르디주에 있는 카라바조(Caravaggio in Lombardy)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라바조보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았던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이탈리아, 1475~1564)와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후배인 그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을 따서 카라바조라고 불리워졌습니다.

     다혈질적인 천성으로 고생했던 카라바조

   그는 본래 벽돌공으로 일을 시작했으나,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놀랄만큼 열정적으로 일하였습니다. 이상주의(idealism)를 경멸하고 자연의 모방자라 할 수 있는 자연주의(Naturalism)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로 격정적인 효과에 주시하였으며, 다혈질적인 천성과 고약한 성격으로 로마의 한 식당에서 큰 싸움에 연루기도 합니다.

   이런 범죄상황을 피해 몰타공화국(Malta)과 나풀리(Naples)로 도망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복수로 인하여 감금되고 맙니다. 그러나 카라바조도 갇혔던 시실리아(Sicily) 섬을 탈출하였고 그를 추적했던 사람을 다시 공격하다가 심한 상처를 입습니다. 그 자리에서 용서를 구하고 다시 로마(Rome)로 떠났으나 도착하기도 전에 체포되어 추방당했으며, 이로 인해 마음의 심한 상처와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겪습니다.

   그의 최대의 작품은 로마 바티칸(Vatican)의 한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매장(Entombment of Christ)"와 몰타 공화국에 소장되어 있는 거대한 길이의 "초상화", 그리고 "엠마오의 저녁식사(Supper at Emmaus, 1601-2)" 등의 그림입니다. 그러던 1610년 7월에, 나폴리를 떠나 로마로 가던 중 폰테콜(Pontercole) 해변에서 열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우선 아래 그림들과 관련한 성경의 내용들을 앞붙입니다. 이 글의 지은이는 예수의 12 사도 중의 하나이며 바울의 동역자로서 의사 출신이었던 "누가"입니다. 이 복음서의 저작 연대는 주후 61-63년으로 추정되며, 누가가 "데오빌로(Theophilus)"를 비롯한 이방인들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무덤에 장사되는 예수 그리스도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에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누가복음 23 : 50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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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매장(The Entombment), Oil on canvas, 1602-1603, Pinacoteca, Rome, Vatican City


     ▲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 세부그림 1 (The Entombment, detail 1), Oil on canvas, 1602-3, Pinacoteca, Rome, Vatican City


     ▲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 세부그림 2 (The Entombment, detail 2), Oil on canvas, 1602-3, Pinacoteca, Rome, Vatican City



     ▲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 세부그림 3 (The Entombment, detail 3), Oil on canvas, 1602-3, Pinacoteca, Rome, Vatican City



   카라바조는 1602년 후반에 위와 같은 대형의 제단화를 완성합니다. 이는 로마의 중심부에 있던 발리첼라의 산타마리아 성당(Santa Maria in Vallicella) 정면에 걸린 초대작이었는데, 현재는 로마 치에사 누오바(Chiesa Nuova)로 불리는 교회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뒷 배경이 대각선으로 돌출한 석판위에 대칭으로 새겨진 카라바조의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이 성당은 가톨릭 개혁의 중심이었고, 희생적인 선행과 자선을 베풀던 곳으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화가의 작품이 걸렸던 것입니다.

     로마 서민들의 시선으로 포착한 예수의 신성한 죽음

   위 작품들 가운데 마지막 세부그림은 막달라 마리아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확대해서 보여주는 마리아의 머리와 얼굴 표정은 "비탄(lamentation)"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망한 얼굴과 몸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종교적인 당황스러움과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극에 달한 슬픔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치른 예수를 무덤에 매장하는 순간으로, 캄캄한 어둠이 화폭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위 성경의 증언대로, 요셉이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인수받아 십자가 형틀에서 내린 예수의 시체를 세마포에 싸서 돌무덤에 매장하는 순간의 엄숙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에 번져 있습니다. 위 첫 그림에서 보면, 식어가는 예수의 육체를 바라보며 비통해하는 사람들 사이로 화면의 오른쪽 위에서부터 사선으로 신비로운 한 줄기의 빛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빛은 최종적으로 예수의 시체에서 신비로운 빛을 발산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구도를 보여주는 성화입니다. 사실 제작 초기부터 로마의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로마의 많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카라바조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 탁월함에 매료되었습니다. 1779년에 나폴레옹 또한 카라바조의 이 작품에 매료되어 파리로 가져갔다가, 그 뒤 1815년이 되어서야 다시 로마의 치에사 노오바 성당으로 되돌려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통하여 진정한 교회의 기초를 바로 세우고 초석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내고자 노력하였으며, 또 사실 당시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영적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였습니다.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성스러운 죽음의 순간을 평범하고 가난한 로마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손을 들어올린 채, 예수의 죽음을 비통해하고 있는 여인을 통하여 화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독특한 경우에서 발견되는 신성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더불어 눈으로 확인하고 그 때의 슬픔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성만찬식"과 같은 교회의 실체적인 의식을 통하여, 현재까지도 교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이틀이라도 카라바조가 전하는 영적인 부흥을 되새기며, 경건한 시간을 보내보시면 어떨까요.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