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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보에서는 많이 풀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이 추운 날입니다. 화재 사고 소식도 끊이지를 않고 화마가 무섭게 쓸고 가는 추운 날이었습니다. 이 매서운 추위에 이웃지기님들과 정기 독자들, 그리고 일반 방문자들 모두 건강한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오랫 만에 종교와 관련하여 예수의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에 담은 성화를 한 점,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전에도 성탄 관련 그림으로 소개한 적이 있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이탈리아, 1571-1610)의 성경에 나오는 12제자의 일화와 관련한 그림입니다.

초기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조의 아래 그림과 약력을 참고한 컨텐츠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6곳인데, 우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http://www.britannica.co.kr/)과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wiki/%EC%B9%B4%EB%9D%BC%EB%B0%94%EC%A1%B0), 인명사전(http://www.biography.com), ARC(http://www.artrenewal.com),  "가톨릭 마당(http://www.pauline.or.kr/catholic/main/index.php)", 서양미술사(http://www.iartedu.com/history/west/h1-13.htm) 입니다.

   또한 참고한 책들은,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김상근 지음, 평단)',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여 번역, 종합, 정리한 것이므로,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크 미술에 대한 간략한 정의와 특징"에 대하여 이 앞 글(http://chohamuseum.net/160)에서 소개하였으므로 참고 바랍니다.


     13세의 이른 나이에 '화가의 길'을 선택하였던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1571년에 이탈리아의 북부에 있는 밀라노(Milano)의 근처 롬바르디(Lombardy) 주에 있는 카라바조(Caravaggio)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라바조보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았던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이탈리아, 1475~1564)와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후배인 그가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따서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기록들을 찾아 갑니다. 카라바조는 13세가 되던 1584년부터, 밀라노에서 4년 동안 '시모네 페테르자노(Simone Peterzano)'의 화실에서 미술에 대한 기초 훈련을 시작합니다. 카라바조의 첫 스승인 페테르자노는 '티치아노(Tiziano, 이탈리아, 1485-1576)'의 베네치아 화실에서 수련받은 화가로 당시 밀라노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1588년까지 소년 견습생 생활을 하면서 카라바조도 그런 스승의 자연주의(naturalism) 화풍에 조명과 색감을 중시하던 매너리즘(mannerism) 화풍을 유지하였으며,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한 단순미가 강조된 종교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 이 때의 카라바조에 대한 기록이나 확실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으며, 스승 페테르자노의 작품을 비롯한 카라바조의 그 어떤 그림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카라바조가 밀라노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당시, 로마에서는 안토니오 캠피(Antonio Campi, 1523-1587)와 같은 16세기 말, 롬바르디아(Lombardy, Lombardia) 거장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세속을 의미하는 '어둠'과 성스러움을 의미하는 강렬한 '빛'을 대비시켜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카라바조의 작품과 같이,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 등장인물들의 긴장된 표정, 물체에 대한 정밀한 묘사 등은 바로 이 롬바르디아의 '자연주의 미술 양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주의 화풍과 매너리즘 화풍을 유지했던 카라바조

   7살이 되던 1577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전염병으로 사망했으며, 20살이 되던 1590년, 어머니마저 사망하는 인생 역정을 겪습니다. 1592년 로마에 도착하여 무명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화실을 거쳐 주세페 체사리(Giuseppe Cesari, 이탈리아, 1568-1640)의 화실에서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이 때에 아래 그림과 같은 '푸른 과일을 깎고 있는 소년'이나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등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뒤에 '과일 바구니'와 관련하여 소개할 계획이므로 기대바랍니다.)

   그는 본래 벽돌공으로 일을 시작했으나,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놀랄만큼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8ㅑ   하였습니다. 이상주의(idealism)를 경멸하고 자연의 모방자라 할 수 있는 자연주의(Naturalism)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로 격정적인 효과에 주시하였으며, 다혈질적인 천성과 고약한 성격으로 로마의 한 식당에서 결투와 큰 싸움에 연루, 투옥되기도 합니다.

   이런 범죄 상황을 피해 몰타공화국(Malta)과 나풀리(Naples)로 도망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복수로 인하여 감금되고 맙니다. 그러나 카라바조도 갇혔던 시실리아(Sicily) 섬을 탈출하였고 그를 추적했던 사람을 다시 공격하다가 심한 상처를 입습니다. 그 자리에서 용서를 구하고 다시 로마(Rome)로 떠났으나 도착하기도 전에 체포되어 추방당했으며, 이로 인해 마음의 심한 상처와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겪습니다.
 
   그의 최대의 작품은 로마 바티칸(Vatican)의 한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매장(Entombment of Christ)"와 몰타 공화국에 소장되어 있는 거대한 길이의 "초상화", 그리고 "엠마오의 저녁식사(Supper at Emmaus, 1601-2)", "메두사(1598)" 등의 그림입니다. 그러다가 만 40세가 된 1610년 7월에, 나폴리를 떠나 로마로 가던 중 폰테콜(Pontercole) 해변에서 열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 과일바구니를 든 소년(Boy with a Basket of Fruit), Oil on canvas, 1593, Galleria Borghese, Rome, Italy ⓒ 2009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저작권 시한이 만료된 작품이므로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감상하기 전에 오늘 그림의 배경이 되는 성경책의 이야기를 앞붙여 소개합니다. 이 편지의 저자는 마태로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이자 이전 직업이 세리였으나, 예수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직업을 버린 사람입니다. 이 편지의 저작 연대는 주후 65-70년으로 추정되며, 제자로서 옆에서 지켜본 마태의 생생한 기록이 돋보이므로, 상상하며 먼저 읽어 보길 바랍니다.

     예수의 예언대로 예수를 3번씩 부인하는 베드로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否認)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마태복음 26 : 31 - 35)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婢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表明)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6 : 69 - 75)



   ▲ 시몬 베드로의 부인(The Denial of St. Peter), Oil on canvas, 1610, Shickman Gallery, New York, USA  ⓒ 2009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저작권 시한이 만료된 작품이므로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앞의 내용을 읽고 위 그림을 감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무슨 내용이며 무슨 그림인지,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등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위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극적이면서도 무척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중앙의 여인과 오른쪽 베드로라는 두 등장 인물의 긴장된 표정은 1584년-1588년까지 페테르자노의 화실에서 견습하면서 영향을 받았고 롬바르디아 미술이 추구하던 '자연주의' 화풍을 따르고 있으며, 스승의 스승 티치아노가 추구하던, 조명과 색감을 중시하던 매너리즘적인 '형식주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테네브리즘을 창시한 카라바조 말년의 완성작
  

   우선 평범해 보이는 세 인물들의 체형 위로 왼쪽 위에서 밝은 빛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 주인공들의 배경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 완전한 어둠입니다. 이 '시몬 베드로의 부인'이라는 작품은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카라바조의 말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이탈리아 미술사에서는 '어둠(Tenebroso)의 방식'으로 불리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의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테네브리즘은 17세기 유럽 화단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시대 사조로까지 발전합니다. 카라바조 회화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 테네브리즘의 원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암굴의 성모(1483)'라고 할 수 있으며, 물체의 위치에 따라서 색조의 명암을 달리했던 다 빈치 회화의 '대기 원근법(Aerial perspective)'과 카라바조가 추구하던 '테네브리즘'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즉 공기나 수증기, 또는 먼지와 같은 작은 입자들이 통과하는 빛은 거리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되는데,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부드럽고 흐리게 나타나며, 가까이 있는 물체일수록 명료하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이러한 대기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대부터 풍경화의 기본적인 화법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며, 등장 인물의 몸으로 쏟아지는 빛의 방향에 따라 인물의 생동감을 풍부하게 묘사하거나 신비감을 더해 표현했습니다.

   다 빈치는, 이렇게 색조의 명암을 이용하여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입체감과 긴장감을 부여하는 방식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라는 용어로 설명하였습니다. 광학(光學)을 회화에 도입하기 시작한 다 빈치의 실험정신이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Tenebrism)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다 빈치의 대기 원근법과 카라바조의 네테브리즘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대기의 색조를 통해서 가깝거나 멀리 있는 물체를 분리시킨 다 빈치의 대기 원근법과 인물이나 물체에 쏟아지는 빛의 각도를 통해 보다 생생한 내면 세계를 묘사했던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은 유사한 출발점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다 빈치와 카라바조로 전해 내려오던 이탈리아 화가들의 명암법은 이 후 렘브란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미술 역사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깊은 색조와 짙은 명암의 대비로 베드로의 시름을 표현

   이 작품은 지난 해에 소개했던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글에서 소개했던 작품들과 같은 해인, 카라바조 말년 즈음의 완성작입니다. 위 그림을 분석하며 주의 깊고 세밀하게 살펴 봅니다. 화가들이 화면에 오른쪽으로부터 역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어 온 이후, 위 카라바조 작품의 이 구성에서 보면,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인물에 극적인 효과와 내면의 깊이 있는 심리 묘사를 보여 줍니다.

   왼쪽으로 인위적인 빛의 징후도 없이 깊은 그림자가 드리운 매우 어두운 밤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한 병사가 보입니다. 그는 얼굴을 암흑을 빨아 들인 듯한 젊은 여인과 오른쪽의 시몬 베드로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얼굴은 병사의 그림자와 어둠에 숨겨져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나 가까운 병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베드로가 12제자임을 부인하는 자신의 말이 확신에 찬 듯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그의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왼 손은 그런 베드로의 말을 대변이라도 하듯 베드로의 얼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사티로스와 소크라테스의 모델로 12제자 가운데 한 명인 성 베드로를 선택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화가들이 집행자로서 이와 같은 머리 모양을 실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위 카라바조의 작품은 검거나 짙은 붉은 빛과 진회색 빛 옷감으로 명암의 극명한 대비를 잘 활용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왼쪽 병사의 등에 비친 가장 밝고 강렬한 빛 한 줄기와 가운데 젊은 여인의 이마에 비친 강렬한 빛과 흑암같은 그림자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오른쪽 베드로의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과 깊은 눈동자, 확신에 찬 두 손에 비친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빛으로 베드로의 부인(否認)과 곧 있을 통곡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처럼 카라바조는 위 그림의 짙은 색채와 극명한 명암의 대비로, 독자(관객)들을 당시 베드로의 깊은 고민과 마음에 남아 있는 깊은 시름 속으로 초대합니다. 그래서 독자를 신이 아닌 인간의 생각과 수준에서 베드로와 함께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근심하게 만들며, 오늘날 우리의 근심과 나의 걱정을 대변하는 듯 보여서 조그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도 잘 견디고 있으므로 모두 건강 먼저 챙기길 바랍니다.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