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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에는 맑은 날씨였는데, 오후에는 함박눈이 날리기도 했습니다. 내리면서 녹는 눈 덕분에 대지는 촉촉히 젖었고, 이내 곧 개이기도 했습니다. 날씨가 무척 변덕스러운 하루였습니다.

   봄 맞이 대청소를 하고, 내 마음에도 봄 빛을 불러들이기 위해 짧은 커트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워낙 긴 머리였었기 때문에 머리도 가벼워졌으며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문의 경비 아저씨는 못 알아보기도 해서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온통 꽃 천지, 클림트의 꽃밭에서 잠들고 싶다

   비온 뒤의 물기를 머금어야 새싹과 그 잎새도 초록으로 물들고 키도 한 웅큼씩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 한 낮의 태양 빛이 열기를 내품어야 들판의 곡식과 열매도 단 맛을 내고 탐스럽게 익어갑니다. 그만큼씩 들판의 이름모를 꽃들과 우리 집 정원의 꽃들도 아름다운 자태을 피워냅니다.

   봄 날에 새롭게
맞는 꽃들은 새초롬하고 예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앞에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의 정원을 거닐었던 것처럼, 잘 가꾸어놓은  어느 집 정원의 꽃밭을 거니는 것처럼, 오늘은 여러분 모두를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오스트리아, 1862~1918)의 꽃밭으로 초청하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클림트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화가입니다. 지난 해에는 한국산업 은행의 달력에 그의 그림들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덕분에 큰 그림으로 좋은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적지 않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내용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작품의 진위 여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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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림트의 초상 ⓒ 2008 klimt

   그의 그림 가운데 유명한 작품은 "입맞춤(Kiss)"과 "유디트(Judith)"입니다. 그는 인물과 초상, 누드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 가운데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지만, 이 봄에 한껏 그 멋을 불러들일 수 있는, 화면 가득 풍성한 꽃 풍경그림 4 점을 감상하려고 합니다.


   그림을 읽기 전에, 그의 일생과 일화, 가족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클림트의 초상과 약력, 그림, 그리고 내용 설명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CGFA(http://cgfa.sunsite.dk/klimt)
Klimt(http://www.klimt-landschaften.at/e/galerie_bild_13.htm), 그리고 Artcyclopedia(http://www.artcyclopedia.com/artists)에서 도움을 얻었으며, 영문설명을 번역하여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빈(Viennese) 화가인 그는 비엔나 분리학파의 창시자였으며, 아르누보(art nouveau, 유겐트 양식,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 및 미국에서 유행한 장식 양식)의 대표자로서, 궁전이나 대저택, 시립극장, 빈대학, 부르크 극장 등의 벽화를 제작하였습니다. 동양적인 장식양식에 착안하였으며, 추상화 같기도 한, 혼합물감, 금박, 은박, 수채를 함께 사용한 다채로운 기법은 그의 독창적인 것입니다.
 
     분리파의 창시자, 아르누보의 대표자로 활동했던 화가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처 바움가르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곱 형제 가운데 둘 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금세공업자였던 아버지가 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해야만 했던 클림트는 14살이 되던 해에 다니던 학교마저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에 대한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발휘된 것은 아주 특별하고도 위험스런 장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정치현실을 비난하는 그림을 담벼락에 그려서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예술적인 재능이 조금씩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비엔나의 국립응용미술학교인 쿤스트게버베슐(Kunstgewerbeschule)에 입학함으로써 직업적인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화가로서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조롱과 야유가 섞인 비판도 서슴지 않는 강인한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미술계의 주류를 이끌었던 미술가협회의 오랜 전통에 도전하여 외국의 새로운 미술경향들을 소개하였습니다.
 
   더불어 젊은작가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분리파(Secession)를 설립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어머니와 누이의 만성적인 정신질환과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은 그에게 있어서 모성과 사랑, 그리고 가족애에 대한 절실한 갈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가족의 죽음은 그의 작품세계와 색채, 주제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에 대해서 좀 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그림들도 그의 말년에 그런 따듯한 시선을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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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양귀비 들판, 1907, 캔버스에 유채, 110㎝×110㎝, 오스트리아미술관 소장 ⓒ 2008 kli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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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림트는 경제적 여유가 있던 말년에, 그가 좋아한 여인 에밀리 플뢰게와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빈에서 가까운 아테제 호수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이 곳은 빈에서도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꽃밭을 풍성하고 추상적으로 묘사한 그림

   클림트는 작업할 때 누가 방해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다양한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기도 하였고, 호수와 주변 산의 풍경을 풍성하게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위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풍경화에는 인물을 그려넣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그의 대부분의 풍경화는 캔버스애 유채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또한 110㎝×110㎝ 의 정사각형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화폭 가득 담아낸 꽃들이 더 풍성해 보입니다. 흰 색이나 붉은 색, 주홍색 등의 꽃들이 크기별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살펴 보면, 마치 한 점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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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 1906~1907, 캔버스에 유채, 110㎝×110㎝, 개인소장 ⓒ 2008 klimt



   바로 위 두  그림도 위의 꽃밭 그림과 같은 구도를 보여줍니다. 해바라기가 주인공인 두 그림에서 그만의 상상과 시간에 대한 느낌, 독특한 기법을 볼 수 있습니다.

     꽃밭에 누워있는 착각이 드는 아름다운 그림

   마치 해바라기가 만발한 꽃 밭을 이불 삼아 누워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또한 위 두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해바라기에 내 감정이 이입된 듯, 내가 해바라기가 된 듯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무척 아름다운 작품들입니다.

   또한 관객이 그림을 감상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림 속의 꽃들은 계속해서 피고 있어서 더 풍성해질 것 같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우리가 잘 아는 "맞춤(Kiss)"이란 그림으로 승화되어 나타납니다.

   위 두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아래 두 그림에서도 정사각형의 캔버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폭 안에 놓여진 꽃들의 구도도 수직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꽃 밭에서 봄 꿈을 꾸게 만드는 클림트의 선물

   이상에서 위 네 그림들을 감상하신 것과 같이, 클림트의 그림은 관객들로 하여금, 화폭 안에서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사각의 구도 안에서 현실세계와 분리된 환상적인 경험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위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봄 날에 어느 꽃 만발한 정원이나 들녘의 꽃밭에 누워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꽃 밭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 꽃 밭에서 꿈을 꾸게 만드는 힘은 클림트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주는 선물입니다. 그 꽃 밭에 누워서 봄을 열망하게 만드는 힘은 클림트만의 독특한 영감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