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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나 사진에 작가가 담아두고자 하는 주제의 대부분은 아름다운 자연이나 인간의 삶과 내면입니다. 또 더러는 전설이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가 특유의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그림이나 사진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그 영상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과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의 제한없이 듣고, 보고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욕심 많고 힘 있는 자들이 대접받는 이 시대의 어수선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더 맑고 순수한 그림이나 순수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워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였던 그림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 전, 아득한 어느 시대에, 양심을 지켜 행동했으며, 지금도 신화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속의 한 여인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외모보다는 마음과 생각이 더 아름다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담아낸 그림들

   아래 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과 그 당시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11세기 영국(England)을 무대로 한 유럽 귀족들의 사랑과 전쟁을 그린 역사소설이 그 배경이며, 이 그림 속의 인물이 바로 고다이버(godiva)라는 여인입니다.

   당시 영국 코벤트리(Coventry) 지방에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한 영주, 리어프릭(Leofric)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열 일곱 살 난 어린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남편의 폭정에 마음 아파하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을 대신하여 세금을 내려달라고 간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남편은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고나면 그러겠노라"라며 조롱하였습니다. 그런 남편의 말에 고다이버는 새벽을 이용하여 마을을 돌기로 결정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 마을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녀의 모습을 내다보지 않기로 굳게 약속을 하였다고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아래 두 그림은 1000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 전설 속의 여인을 900년 뒤이며,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도 훨씬 전에 두 화가가 각각 그린 작품입니다. 각 그림의 작가에 대한 약력을 먼저 간략하게만 살펴보고, 두 그림을 비교, 감상하면서 그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아래 두 화가, 콜리어(Hon John Collier, 영국, 1850-1943)와 헌트(William Holman Hunt, 영국 런던, 1827-1910)의 약력은 "영국 빅토리아왕 시대의 예술(Victorian Art in Britain)" 이란 책에서 발췌, 번역한 것이며, 그림과 설명은 Art Renewal Center(http://www.artrenewal.org)에서 도움을 받았고 참조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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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다이버 부인 (lady godiva), 1898, ⓒ 2008 Collier(저작권 시효가 말료된 작품, 자유롭게 이용 가능)



   콜리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신고전주의 화가로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1850년에 콜리어는, 후에 몽스웰(Monkswell)의 군주가 되었으며 당시에는 유명한 재판관이었던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유화 입문서(A Manual of Oil Painting)"를 쓴 신 고전주의 화가

   아버지는 화가가 되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어려 학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당시 유명했던 화가 타데마(Alma-Tadema, 네덜란드, 신고전주의, 1836-1912)에게 소개시켜주어 그림공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슬레이드(Slade) 학교를 거쳐 파리와 독일 뮌헨(Munich)에서 공부하였으며, 전쟁 중에는 외국인 사무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몇몇 학교에서는 그를 화가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유화 입문서(A Manual of Oil Painting)"를 쓴 저자였으며, 현재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표본으로 인정받고도 있습니다. 특히 구성적인 느낌과 선의 표현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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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츠가 제공한 콜리어의 초상 ⓒ 2008 Kurtz

     햇살마저 정적에 쌓인 마을

   위 그림을 보면, 이른 아침으로 보이는 미명에 마을의 중심가를 향하여 말 한 필이 또각또각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태 고운 한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알몸인 채입니다.

   긴 생머리와 고개를 늘어트린 채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은 다소 외설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의 상황으로 볼 때, 시끌벅적해야 할 마을의 광장과 그 정경은 이상할 만큼 고요하며, 묘한 정적에 쌓여 있습니다.

   사람 하나 찾아 볼 수 없으며, 심지어 건물의 문이나 창문조차 굳게 닫힌 채,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누구 하나 창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없음은 물론이요,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의 마을처럼 보입니다. 햇살조차도 수줍은 듯, 그녀의 몸을 비껴 부드럽게 흩어집니다.

   다시 그 당시의 배경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유럽의 영국에 있어서, 11세기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복잡한 변화를 겪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6세기 이후의 영국은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Anglo Saxon) 족의 나라였습니다. 또한 8세기와 10세기에는 북유럽의 바이킹 족인 데인인들의 침략을 받았으며, 11세기 초반은 이 데인족의 왕인 크누트 1세의 통치를 받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가혹한 세금징수에 허덕이던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의 현실

   이 데인인들의 영국 통치로 농민계층의 몰락을 야기시켰습니다. 이전에는 영주의 땅을 빌려 소작만 하던 농민들의 자유 신분이, 데인인들의 가혹한 세금징수에 의해 노예상태인 농노의 신분으로 하락하였습니다.

   급등하는 세금의 무게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으며, 영주에게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속박되었습니다. 런던과 비교적 가까운 코벤트리 지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그 당시 이 지방의 영주였던 레오프릭도 농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신실한 종교인이었며, 신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던 고다이버는 본 토착민인 앵글로색슨 족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당시 토착민들을 통치하던 데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토착민이었던 고다이버는 나날이 몰락해가는 농민들을 보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가슴 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과중한 세금 징수를 줄이고, 영주와 농민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남편 레오프릭은 그의 부인인 고다이버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간청이 그칠 줄 모르자,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제안 하나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녀의 농민에 대한 사랑이 진실이라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 한 바퀴를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이행한다면, 세금감면을 고려해 보겠다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고다이버 부인의 숭고한 지성과 결단, 고다이버이즘(godivaism)

   위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녀는 깊은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분명 여러 번 망설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몇 날 며칠을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결국 농민들을 위한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코벤트리 마을의 농민들 사이에 순식간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거사가 이루어질 날짜와 시간도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사실과 영주 부인의 그 갸륵한 마음과 결단에 마을 농민들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또한 마을 농민들은 그녀의 숭고한 지성과 그 의지를 존중하여, 다함께 큰 결정을 내립니다. 그녀가 마을을 도는 동안, 단 한 사람의 누구도 밖을 내다보거나 그녀의 벗은 몸을 바라보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고다이버 부인이 벌거벗은 알몸으로 마을에 내려옵니다. 그 날 아침, 코벤트리 마을 전체는 무거운 정적이 흐릅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이 은혜로운 알몸 행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했던 코벤트리 마을의 양복재단사, 톰이 마을사람들과의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톰이 커튼을 슬쩍 들추어 부인의 벗은 알몸을 보려는 순간, 그만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습다.

   참 신기하게도, 아름답고 숭고한 고다이버의 뜻을 성적인 호기심으로 더럽힌 데 대한 신의 징벌이었다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훔쳐보기의 대명사, 관음증이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로도 전해져 내려오는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학자와 역사가,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었으며,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관행이나 상식, 힘의 역학에 불응하며, 대담한 역의 논리로 뚫고 나아가는 정치"를 고다이버 부인의 대담한 행동에 빗대어,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숭고한 정신과 지성을 기리고, 이런 정신을 존중하는 정치를 그리워함일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우리나라에서도 위와 같은 고다이버 부인의 희생과 갸륵한 마음, 그리고 대담한 지성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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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다이버(Godiva) 영주 부인, 1856 ⓒ 2008 Hunt

 

   위 그림의 화가, 헌트는 전 라파엘파(협회)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헌트는 1827년, 영국 런던에서 한 미술품의 도매상점에서 일하던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일생을 헌신하는 삶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진지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유머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전 라파엘파의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화가

   1844년에는 왕립예술학교에 입학하여 밀라이스(1829-1896)와 로세티(Dante Gabriel Rosetti, 영국 런던, 1828-1882)를 만났고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1854년에 이르러서는 그가 그리고자 하는 종교 그림의 실제 배경을 관찰하기 위해 성지를 방문하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첫 번째 결과가 속죄양(The Scapegoat)과 세계의 빛(The Light of the World)입니다. 이는 그가 화가로서 인정을 받은 첫 작품이었으며, 더불어 그에게 재정적인 안정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는 타고난 재능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남부의 서리(Surrey) 주에 있는 시원한 숲에서 순전한 노력과 헌신으로 밤에 주로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성공한 화가로 인정도 받았으며, 말년에는 빅토리아 로마 여황의 초상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다른 그림들에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를 끄는 화려함과 매력적인 개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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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트(Hunt)의 자화상 ⓒ 2008 Hunt

     그녀가 평범해 보이십니까?

   이제 여러분들께 소박해보이는 연필소묘의 위 그림을 보는 느낌이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맨 위, 첫 번째 그림에서 이미 그 사연을 들었기에 자태가 고운 여느 부인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바로 위 그림만 놓고 보아서는 그냥 평범한 여느 부인으로 보입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하지도, 결심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지체 있는 여인 정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마을 농민들의 세금 인하를 위해 말을 타고 알몸 시위를 했던 전설을 들은 후, 감상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평범해보이지 않습니다. 이야기로만 듣던 그녀를 이 그림에서 만나는 저의 솔직한 처음 느낌은, 전설과는 다르게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단순히 화려하고 무척 아름다우리라고만 상상했던, 그녀에 대한 나의 기대를 무참히 뭉개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전설 속의 여인들을 상상했던, 그녀에 대한 나의 기대가 지나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찬찬히 그녀의 모습과 그림의 배경을 살펴 본다면, 그런 자신의 실망이 얼마나 얄팍한 상상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자신에게 분명 또 한 번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고다이버 부인의 당당하고 도도해 보이는 아름다움과 그 지성

   그림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는 앞 모습이 아닌 조금은 도도해 보이는 옆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연필로만 그린 흑백 그림이기에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 않는 옷차림입니다.

   하지만, 흐트러지지 않은 자태와 곱게 빗어 뒤로 올린 우아한 머리와 당당한 손 매무새, 단정하게 여민 앞섶이 도도해 보입니다. 여기에 곱고 길게 늘어트린 옷자락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배경으로 보이는 소품들 하나하나도 그녀의 자태를 돋보이게 합니다. 뒷 배경의 가운데를 채우고 있는 아치형 문과 왼쪽 위에 걸려 있는 십자가 위의 인간 예수의 모습, 왼쪽으로 앞에서 중간 쯤 벽면에 그려진 학의 모습, 그리고 그 밑에 새긴 카멜레온 모양의 벽장식이 그녀의 삶과 영혼을 대변합니다.

   또한 오른쪽 뒷 배경에 보이는 보리 이삭 같기도 하고, 이름모를 들풀의 꽃 같기도 한 벽면 장식까지 그녀의 결단과 행동으로 인한 농민들의 결실과 풍요로워진 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점은, 그토록 아름다운 마음과 지성(至誠)을 지닌 고다이버 부인의 초상화를 색깔도 넣지 않고, 소박한 연필 소묘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런 의도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이 그림을 그린 헌트는 그의 짧은 약력에서 살펴보았듯이, 실제보다도 더 화려하고 매력적인 그림을 많이 그려 당대에서도 인정을 받았던 화가입니다.

     단아한 연필소묘로 당당한 자태와 숭고한 영혼까지 묘사해낸 그림

   이런 그가 전설 속에 살았있던, 그렇게도 아름다운 고다이버 부인을 상상하여 그림에 있어서, 결단코 화려한 색채를 버렸던 것입니다. 굳이 단아한 연필소묘로 그린 화가의 의도는, 그녀의 숭고한 영혼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자 했던 헌트의 배려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눈으로 보이는 겉모습이 아닌 그녀의 마음과 인성을 담아내려는 화가의 의도가 있었음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채색그림보다도 더욱 놀랍도록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림에 대한 사연과 뒷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감상하는 윗 그림의 앳된 고다이버는 숭고하고 성스러워 보이며, 전혀 조금도 외설스럽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더욱 아름다울 것 같은 그녀의 앞 모습까지도 상상하며 보고싶어지게 만듭니다.

   당시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서, 결단코 쉽지 않았을 결단을 내리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깊은 고민에 잠겼을 고다이버 부인의 어진 심성이 그립습니다. 더불어 그러한 결정과 실행을 위해 깊은 사색에 잠겼었을 그녀의 영혼이 이젠 더욱 그습니다.

   위 헌트 그림의 주인공인 고다이버 부인의 당당한 자태와 담대한 용기, 그 마음에 품은 지성(至誠)이 더욱 고결해보입니다. 그래서 위 연필소묘 그림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그녀의 뜻 깊은 행동을 다시 돌아보고 기억하게 합니다.

   당시 고다이버 부인의 "파격적인 알몸 시위"는 힘없는 농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아름다운 결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웃을 돌아보는 고귀한 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오는 낮은 내면의 소리에 진솔하고 성실했으며, 현실을 성찰할 줄 알았던 자비로운 지성을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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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맨 밑에 그림 .. 순간 레오다르도디카프리오 삘이... ^^;;

  2. 마음속에 던져진 돌멩이때문에 물결이 일때면 그것을 잔잔히 가라앉히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사람에게 그림은 마음의 안정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전 그림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그림을 그리는 재주도 없지만 좋은 설명과 그림을 보고 있으니까 새로운 감정이랄까 생각들이 정제되어 나오는듯한 느낌이네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3. 색깔이 있는 콜리어 그림이나 헌트의 소묘 그림이나
    두 여인이 다 아름답다라는 생각만 드네요.
    지성과 미모까지 한 여인에게 몰아 준 신은 정말 불공평합니다.

    • 나무님 말씀을 듣고나니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지성 앞에선 질투 따윈 부끄러워지는 걸요. ^^
      좋은 말씀과 관심에 늘 감사하고 있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4. 저 고다이버 부인의 매혹적인 그림 본적 있어요. 너무 아름답길래, 어떤 그림인가 궁금했 찾아봤었는데, 그 숨겨진 이야기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그때는 단순한 몇가지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초하님의 글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네요.

    요즘 도서관에서 <조이한 진중권과 함께하는 인문학, 그림을 만나다>란 강의를 진행하면서 강의도 듣고 있는데요. 그냥 그림으로서만 볼때와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보는 그림이 정말 다르더군요. 초하님의 글을 볼 때도 그런 느낌이에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5. 뉴욕에 박물관 몇개 보고는 예술에 대해 알고 싶어지곤 했습니다만..
    현실은 가깝고 예술은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렵네요^^;
    제 정서가 너무 메말라서 그런가봐요 ㅡㅜ

    • SuJae 님처럼, 직접 찾아가 감상하셨던 분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아십니까?
      전 그런 아쉬움을 훗날을 기약, 계획하면서, 이렇게 디지털 화면으로 달래고 있답니다.
      수재님도 종종 뵐 수 있길 바랍니다~~

  6. 안녕하세요.
    얼마전에 제가 쓴 베르메르 관련 글에 트랙백 걸어주셔서 처음 찾아왔었습니다.
    저도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열었어요.
    아직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림 얘기 가끔 올릴 예정이에요. ^^
    링크 추가하고 갑니다. 교류하면서 지내요 ^^

  7. 처음 듣는 얘기인데 무척 재미있네요.
    이야기와 함께 하는 미술을 보여주시는 초하님 덕분에
    메마른 감성에 물방울 몇 개 떨어뜨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 ㅋㅋ 실은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있답니다.
      제 느끼기엔 메마른 감성은 결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가눔님의 감성에 자극이 되었다고 하니, 기쁘고 즐거워졌습니다. 종종 놀러와 쉬어가십시오.
      좋은 봄 날을 만끽하고 계시죠??

  8. 교과서에서 몇번 나왔던 유명한 그림.

    11세기 영국, 데인족, Peeping Tom의 어원은 몰랐었는데, 확실히 알고 가요. :D

    • 언제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고다이버를 통해 당시 영국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답니다. 좋은 정보가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9.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