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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을 앞둔 주말 같은 금요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을 구별하여 지내시는 분들을 위해, 그리고 종교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표현주의 대가의 그림으로 특별히 준비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노르웨이, 1863-1944)의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의 예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도 무척 좋아하는 뭉크의 그림들 가운데서 특별히 한 점만 골라 소개하고 나눕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작품이어서 고이고이 간직하던 특별한 그림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뭉크의 그림일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기회를 보아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와 마돈나"나 "푸른 채색의 우울한 그림"을 소개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므로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뭉크 그림과 약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CGFA(http://cgfa.sunsite.dk/munch)", "Olga'a Gallery(http://www.abcgallery.com/M/munch)", 그리고 "뭉크의 상징주의 그림(The Symbolist Prints of Edvard Munch:The Vivian and David Campbell Collection, Elizabeth Prelinger 지음, Yale University Press, 1996)",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고 직접 방문해 살펴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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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병이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a Wine Bottle), 1906, oil on canvas, Munch Museum, Oslo, Norway ⓒ 2008 Munch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대표적인 화가로 뭉크를 꼽습니다. 이 표현주의에 대해 먼저 간략하게만 알아봅니다. 표현주의는 20세기 미술 운동 가운데 하나로, 자연주의적인 형태나 원근법적인 공간 묘사 대신 그림의 의미와 감정을 강조합니다.

     표현주의 예술과 뭉크의 미술 세계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주로 독일 미술의 브뤼케파(Die Bruche)와 청기사파(Blaue Reiter)와 관련이 있으며,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도 이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1911년 베를린의 야수파(Fauvism)와 입체파(cubism) 전시회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입니다.

   본래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나, 나치의 탄압으로 해체되기 전까지 독일에서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이는 화가의 이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장과 격렬한 화법, 그리고 강렬한 색채를 통하여 왜곡된 진실을 묘사하는 예술을 말합니다.

   다시 간략하게 정리하면, 표현주의란 마음의 상태를 그림으로 강력하게 묘사해낸 20 세기의 미술을 말합니다.
뭉크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인 불안과 공포, 애정, 증오 등을 격렬한 색채와 왜곡된 선이나 형태를 사용해 표현함으로써, 일찍이 표현주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선구자였습니다.

   뭉크의 미술은 깊은 불안과 공포, 불길한 전조, 음울한 빛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의 그림처럼 뭉크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감성을 표현해 내기 위해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 율동하는 듯한 선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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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는 담배를 들고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a Burning Cigarette), 1895,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slo, Norway ⓒ 2008 Munch



   뭉크의 약력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합니다. 맨 아래에 연대별 약력과 그의 작품활동에 대해 덧붙였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였던 뭉크(1863. 12. 12 ~ 1944. 1. 23)는 노르웨이의 뢰텐(Løten, Norway)이라는 작은 지방에서 5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군 의사였으나 심한  이상 성격자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병약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던 뭉크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모두 결핵으로 여의었으며, 아버지와 남동생도 그가 어렸을 때 사망하였습니다. 누이동생은 정신병에 걸렸으며, 뭉크 자신도 무척 병약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가정 환경과 육체가 그의 정신과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나이 17세 되던 해인 1879년에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Oslo, 그 당시 Christiania)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9세 되던 해인 1881년에서 1884년 사이에 오슬로 미술학교(Royal Drawing School)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급진적인 그룹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초기 작품, "병든 아이(The Sick Child , 1881-86, Nasjonalgalleriet)"에서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응시는, 그 후의 작품에서도 계속됩니다.

   1885년 국가에서 주는 상을 받음으로써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주로 파리(Paris)와 베를린(Berlin)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에는 인상주의(impressionism) 와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개인적인 양식과 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점차 질병과 죽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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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규(The Scream), 1893,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National Gallery, Oslo, Norway ⓒ 2008 Munch



   1890년, 뭉크는 파리로 갑니다. 파리에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일본의 목판화()와 피사로(Camille Pissarro, 프랑스, 1830-1903),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프랑스, 1864~1901)의 작품이었으며, 세잔(Paul Cézanne, 프랑스, 1839-1906), 고갱(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과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매력이었습니다.

   1892년 가을에는 베를린미술협회전에 출품하였는데, 초기의 애수 어린 서정적 성격을 더욱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출생과 죽음,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실존의 고뇌와 불안을 표현한 뭉크

   그러나 여기서 뭉크의 독자적인 세계가 확립된 것입니다. 게다가 베를린에서 스트린드베리와의 만남은 그 깊이를 더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파리에서는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등과 사귀고 헨리크 입센
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작 "생명의 프리즈" 연작()을 완성하고, 1894년부터는 에칭, 판화를 시작하였습니다.

   1908년에서 1909년에는 신경병으로 코펜하겐(Copenhagen, 덴마크의 수도)에서 요양하였으며, 그 후부터 색채가 밝아지고, 문학적, 심리적인 정감이 두드러집니다. 1910년부터 노르웨이에 정착하였으며, 그의 초기 작품이 소모적이고 내성적이었다면, 후기작품은 삶의 기쁨과 자연의 풍요로움 등 긍정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1937년 나치스는 독일에 있는 그의 모든 작품을 퇴폐예술이라 단정하여 몰수해버렸고, 말년에 뭉크는 은둔생활을 하였습니다. 한편 판화가로서도 근대의 대작가이며, 표현물주의 미술의 선구자이자, 노르웨이 근대회화의 가장 뛰어난 인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뭉크의 작품은 인간실존의 고뇌와 불안을 표현한 "절규(The Scream, 1893, Nasjonalgalleriet, Oslo)"입니다. 그 밖의 대표 작품으로는 "봄", "질투", "다리 위",  "저녁시간", "죽음의 방(The Death Chamber", "별이 있는 밤", "백야()"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뭉크는 말년을 오슬로 근처 집에서 지내며 사망할 때까지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림과 판화, 소묘 등 모든 작품을 그가 나고 자랐던 오슬로 시에 기증하였으며, 오슬로 시는 1963년 "뭉크 미술관"을 건립하여 그의 작품들을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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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크(Edvard Munch) - 골고다 언덕(Golgotha) 1900, Oil on canvas, 80 x 120 cm, Munch Museum, Oslo, Norway ⓒ 2008 Munch



   오늘 감상하는  "십자가 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한 그림은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의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아래 관련글로 소개한 다른 그리스도의 모습과 비교, 감상하시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표현주의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뭉크의 푸른 빛과 표정들

   위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뭉크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는 화폭 중앙의 맨 위에 그려졌지만, 이 그림에서 만큼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저 전체적인 형체만을 표시했을 뿐, 얼굴의 표정이나 못자국, 옆구리의 창에 찔린 자국 등,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른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 위 예수의 양 옆, 두 강도의 모습도, 물론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부각되어 있으며, 또렷하게 묘사한 주인공들입니다. 많은 군중들이 한결같이 독자를 응시하고 있으며, 그들의 표정도 역시, 하나같이 놀라움, 침울, 우울, 절망의 느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극단적인 공포의 감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주목해 감상할 부분은, 위 그림의 전체적인 채색은, 뭉크가 다른 그림들에서도 즐겨 그렸던 "푸른 빛"입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뒷 배경으로 보이는 짙푸른 하늘과 옆으로 흐르는 붉은 채색의 구름이며, 절망하는 군중들의 푸른 빛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 붉은 빛의 구름이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역할과 부활 의미의 상징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그린 다른 작가들의 그림들과는 달리, 위 예수는 뭉크만의 독창적인 십자가 위,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뭉크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그 때 그 상황의 놀라움과 나약한 인간의 심리 불안과 극단적인 공포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위 예수의 성화는 뭉크의 그림 가운데에서도 표현주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죽는 날까지도 마치 자신인 듯, 영혼의 고통을 녹여내는 지속적인 작품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줬던 뭉크와 그 그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 *  연대별 뭉크의 약력과 작품활동 * *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