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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시작된 제가 바로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셋 째달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3월의 첫 학기가 시작되면서 더 바빴고 그러면서 실은 몸 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아직도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과는 달리, 자꾸 늦은 인사를, 그것도 이따금씩 밖에는 드리게 못하게 되어 저 역시도 무척 안타깝습니다. 저도 미처 챙기지 못하고 있는 이 곳, '초하미술관'에 먼저 찾아와 안부글까지 전해주고 가신 분들과 정기적인 독자를 포함하여 모든 방문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소개할 그림은, 사실은 새해 첫 날에 첫 그림으로 소개하고 싶어 골라두고 간직해오던 작품들이었습니다. 지난 고난 주간에 "산 위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란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소개했었는데,
리브홀릭님이 <인문학, 그림을 만나다>란 조이한의 강좌에서 만났던 화가라며 반가워하셨고, 아래 그림들을 보고 싶어하는 아쉬운 마음의 댓글을 남겨주셨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직 그 댓글에 대한 답글조차 달아 드리지를 못해 늘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다녔고, 또한 소개에 대한 일말의 책임과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새해에 감상하면 더 제 격일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독일, 1774~1840) 의 낭만적인 그림, 8 작품으로 그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수사가 되어 바라보게 만드는 경건한 느낌의 풍경화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때론 사진을 대하는 것보다도 더 실제같은 느낌으로 그림 속, 그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함께 감상할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이 그렇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에 압도되어 숙연해지기도 하며, 그 아름다움이 성스럽고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경이로운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을 "범신론"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이전에도  "창의력 테스트
"란 글을 통해 "화실에서 바라본 조망(View from the Painters Studio, 1805-6,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산 위의 십자가"같은 제목으로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소개한 적이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들은 이 기회에 함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 때 소개했던, 성품까지도 느껴지는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도 아래 초상 그림과 비교해 감상해보시면 색다른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자화상은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드는 초상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래 그림과 오늘의 글, 그리고 프리드리히의 약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인명사전(http://www.biography.com)",  "Caspar David Friedrich and the Subject of Landscape(Joseph Leo Koerner 지음, Yale University Press)", 그리고 cgfa(http://cgfa.sunsite.dk/friedric/), ARC Museum(http://www.artrenewal.org), "Mark Harden's Artchive(http://artchive.com/ftp_site.htm)", 여기에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들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관심있는 분들은 살펴보시고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 곳 미술관에 소개된 모든 작품들 뿐만 아니라, 오늘 아래 그림들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훨씬 넘었으며, 이미 그 저작권 시효(유럽, 70년)가 말료된 작품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용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담아다 사용하실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의 선구자, 프리드리히

  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의 화가(Romantic painter), 프리드리히는 광활하고 신비한 느낌의 풍경화나 계절을 바탕으로한 풍경화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자연의 힘 앞에 마주한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주었으며, 낭만주의 운동의 주요 관심이었던 "숭고한 인상"을 확립하였습니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독일, 1774. 9. 5-1840. 5. 7) 는 독일의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에 있는 도시인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에서 태어났습니다. 1794년에서 1798년까지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Copenhagen)에 있는 코펜하겐 아카데미(Academy of  Copenhagen)에서 그림공부를 마쳤습니다.

   1798년 이래로는 독일 남동부 작센주()의 주요도시인 드레스덴(Dresden)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낭만주의 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던 1816년에는 드레스텐 아카데미(Academy of  Dresden)에서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1824년에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  Don Kurtz 가 제공한 프리드리히의 초상화   

   1807년까지 수채화를 주로 그렸던 프리드리히는 그 이후로는 전통적인 종교그림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순수한 풍경화나 산의 해돋이와과 해넘이 등 매혹적인 독일 풍경과 고딕 전통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아래에 보시는 것처럼, 해가 갈수록 그의 풍경화에는 상징적 요소들이 점차 풍부해집니다.
                                                                             

   그가 생을 마감하던 1840년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미술교수로 재직하던 드레스덴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펜을 이용해 윤곽을 그렸던 그의 초기 작품과 중기 작품 대부분은 드레스덴, 베를린, 함부르크 등지의 미술관에 많이 소장되어 있으며, 자연풍경에 대한 감응을 더 많이 반영했던 후기 작품들은 오히려 러시아 각지에 산재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가장 순수한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나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반영한 풍경화를 많이 남겼으며, 자연의 풍경적인 제재(題材)를 주요 소재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가을, 겨울, 새벽, 안개, 월광 등의 정경을 독특한 고요함과 정적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독특한 화풍은 드레스덴 지방 이외로는 거의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일화단에서도 잊혀졌었으나,  20세기 초 이래로 재평가되었습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19세기 전반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 까마귀들이 나는 나무(The Tree of Crows), 1822, Oil on canvas, Musée du Louvre, Paris, France


             ▲ 해넘이, 형제(Sunset, Brothers), Oil on canvas, 1830-1835, Private collection


   
17세기의 과학혁명과 18세기의 계몽사상이 발전하면서 교회의 압도적인 지배력과 엄격한 교리가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18세기 이후의 미술가들은 점차 새로운 종교적 영감에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미국과 독일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에 깃든 신을 묘사했습니다.

      범신론적인 종교관을 담아낸 풍경화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 특히 독일문화에서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와 같은 화가들이 대안적이고 주관적인 종교체험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작품에 꽃, 나무, 물, 공기 등 자연에 깃든 신성한 존재에 대한 범신론적인 종교관을 표현해냈던 것입니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와 같은 독일 낭만주의 시인처럼, 당시의 프리드리히 또한 "무한" 이라는 개념에 매혹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그림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관찰자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시선은 화폭 안의 햇살이나 달빛을 가로질러 수평선에 떠오르는 노을 속으로 사라집니다. 더불어 관객들의 시선도 역시 저 멀리 노을 속으로 가둬집니다.

   신비한 정신, 위대한 보편 정신이 자연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런 신비감을 경험하고 직관하기 위하여 그는 스스로를 버리는 절제된 생활을 실천합니다. 프리드리히의 완벽할 만큼 고요한 오늘의 풍경그림들은 상징주의(symbolism)가 스며든 영적인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달을 관찰하는 두 남자(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 1819-20, Private collection


          ▲ 달을 관찰하는 남녀(Man and woman contemplating the moon), Oil on canvas,
                            1830-1835, Staatliches Lindenau Museum, Berlin, Germany


   ▲
바닷가의 달맞이(Moonrise By The Sea), 1822, Oil on canvas, 1822, Nationalgalerie,
                                       Berlin, Germany


    인간은 폭풍이나 눈덮인 산, 해돋이나 달맞이와 같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강력한 자연현상에 직면할 때, 경이로움과 함께 무력감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바로 위 세 그림 가운데 윗 두 그림과 바로 아래의 두 그림은 같은 장소에서 하루 가운데 다른 시간대의 강력한 느낌을 그려냈습니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여러 해(1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다른 영감을 이끌어내는 집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햇빛(달빛)과 그림자는 지구의 움직임과 대기 중 수분의 양, 특정 장소의 반사되는 빛의 특성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지속적으로 변화합니다.

     우주의 섭리를 상징적, 비유적으로 묘사한 풍경화 

   프리드리히는 마치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동일한 풍경이 여러 시간대에 따른 빛의 형태에 따라 연출되는 차이점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작으로 묘사해냈습니다. 이러한 연작을 그릴 때는 이젤 옆에 한무더기의 캔버스를 쌓아놓고 빛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캔버스를 사용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풍경화에서 빛과 어둠은 그림의 주제를 깊은 상징의 의미로 물들입니다. 밤에서 낮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유한한 인간의 존재보다 위대하고 영원한 우주의 체계나 신의 계획 등을 비유합니다.

   빛과 어둠을 더욱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할 경우, 오늘 그림과 같은 태양은 적극적이고 남성적인 힘을 나타내며, 자연계에 생명을 주는 힘과 에너지로 그려집니다. 반면에 차가운 은빛의 달은 휴식과 잠, 꿈, 정신적 명상과 관련하여 그려지며, 더 적극적으로는 죽음의 시간을 나타내는 밤과 함께 여성적이고 조용하고 억제된 것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작품을 통하여 프리드리히는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존재의 나약함을 상징적으로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둡고 차분한 색조를 사용하여 그러한 암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지그시 억제하여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프리드리히는 독일의 철학적인 관념주의(idealism, 이상주의)와 낭만주의(romanticism) 개념들을 화폭에 성공적으로 옮겨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치 풍경 사진 한 장을 찍어내듯이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화가 아니라, 자연을 통해 느끼고 교감한 풍경화에 신의 영감과 계시를 담아 묘사했던 것입니다.


      ▲ 바닷가의 달맞이(Moonrise By The Sea), 1821,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바닷가의 달맞이(Moonrise By The Sea), Oil on canvas, 1821,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여인(Woman Before The Rising Sun), 1818-20, Private collection


  지금까지 그의 여러 풍경그림들 가운데에서 해넘이와 달맞이, 그리고 해돋이와 관련한 경건한 느낌의 그림들을 감상하였습니다. 광활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의 바다와 수분을 머금은 대기, 영원을 암시하는 하늘 공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묘사된 대부분의 인물들은 고독한 자태를 보여주며 생각에 잠긴 관찰자나 철학자, 또는 수사나 종교에 몸담고 있는 수사로 묘사되었습니다. 특히 그 주인공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앞모습이 아닌 뒷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림 안에 신비감을 더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그림 안에 묘사된 인물들은 한결같이 뒷모습의 뚜렷한 윤곽으로 햇빛과 달빛을 향해 다가가는 다소 경건한 모습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배경으로 한 차가운 색채, 밝고 깨끗한 채광, 선명한 윤곽은 깊은 사색과 고독, 인간의 무력함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숭고의 미학과 황홀한 전율의 풍경화 

  특히 위 그림의 "달맞이와 관련한 풍경화"는 다른 어느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도 만나기 어려운 소재의 그림입니다. 이는 그가 낭만주의 화가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주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기에 충분한데, 이는 그의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력이라기 보다는 자연의 위엄과 신의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의 저술에서 밝힌 것처럼, 위 그림에서의 "산"은 신앙을 상징합니다. 또한 "지는 태양 광선"은 기독교 이전세계의 종말을 상징하며, "나무(특히 전나무)"는 희망을 향해 일어섬을 상징합니다. 이런 상징을 통하여 인간과 신이 깃든 자연과의 소통과 공감을 암시합니다.

  화가는 위 그림들을 통하여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자연의 힘에 비하면 인간은 한없이 무력한 존재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또한 숭고의 미학을 낭만주의 운동의 주요개념으로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더불어 이런 그의 작품활동은 후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는 관념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독일, 1724-1804)가 당시 유럽의 문학과 예술을 탄생시킨 감정을 "숭고"라는 낱말로 기술한 데서 기인합니다.
 

   프리드리히의 죽음과 함께 당시에는 그의 명성이 쇠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재평가한 20세기 관객들은 그의 비유적인 표현에 또다시 매료되었습니다. 그런 비유와 상징성으로 21세기의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하는 화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가깝게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나 경부운하 문제에 던지는 경고 메세지가 들려옵니다.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경이롭기도 하지만, 분명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더불어 마음까지 덩달아 숙연하고 경건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2008년 3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이 새롭게 세웠던 계획을 돌아보고 수정, 보완하는 데에 위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도 조용히 묵상하며, 새롭게 마음 다잡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무자년,
올 2008년 내내 무엇보다 강건하시고, 모두에게 신나고 좋은 일만 계속되길 바랍니다.
이 한 주 동안에도 즐겁고 행복한 소식만 전해주시길 목빼고 기다릴 것입니다.  ^(*


Posted by 초하(初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