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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둘 째주에 들어섰고 6, 10 민주항쟁 21주기를 맞는 날입니다. 이 땅, 우리 민족,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그들의 거룩한 뜻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소망해보는 날입니다. 직접 광화문의 촛불문화제에 참석 못하는 아쉬움이 참 크지만, 제 블로그 한 켠에 촛불을 밝히는 것으로 마음의 지원을 보냅니다.

   올 이른 여름 더위가 시작되고 보니, 가을이 더 기다려집니다.  덕분에 밀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대추나 사과, 감, 밤과 같은 가을 과일들은 빛 고운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제 한여름 낮의 남은 열기 덕분에 몸과 마음 모두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황금벌판에서 곡식 영그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도 하고, 넓은 논 가득 풍요롭게 무르익어 고개 숙인 밀 이삭을 바라보며 행복해하실 농부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곳 평택에서도 모내기한 논들을 보았습니다. 초록빛 고운 논에 모여사는 벼포기들은 주인 농부의 부지런한 발소리를 듣고 자라고 벼이삭은 그 소리에 놀라 영글어 간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사시는 농부들의 땀방울과 추수하는 농촌 풍경이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황금빛 들녘과 풍요롭고 활력 넘치는 초여름 추수풍경

   오늘 소개할 작품이 그런 추수현장을 실감나게 담아낸 레옹 레르미트(Leon Augustin L'hermitte, 프랑스, 1844-1925)의 풍경화 9점입니다. 자연주의 화가였던 레르미트가 보여주는 황금빛 들녘과 농촌 풍경을 유감없이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며, 농부들의 고단한 일상과 정직한 활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르미트는 이 곳을 통해서는 처음 소개하는 화가입니다. 그림을 감상하기에 앞서 이해를 돕고자 로댕(Rene-Fransois Auguste Rene Rodin, 프랑스, 1840 - 1917)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프랑스, 1864-1943)이 직접 빚은 레르미트의 초상과 함께 간략하게나마 그의 약력을 덧붙입니다.

   오늘 그의 그림과 약력, 그에 대한 설명은 브리태니커사전과 Hammer Galleries(http://www.hammergalleries.com), Van Gogh Gallery(http://www.vangoghmuseum.nl), Frost & Reed(http://www.artnet.com), Art Renewal Center(http://www.artrenewal.org), Renoir Fine Art Inc.(http://www.renoirinc.com),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스테파노추피 지음, 예경)"을
참조하였습니다. 그의 많고 다양한 그림들을 다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므로 직접 방문해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레르미트가 태어난 시대는, 프랑스의 도시는 물론 시골의 풍경도 변화를 겪던 과도기였습니다. 파리를 포함한 도시는 도시화가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되어 인구는 한 도시에 더 밀집되고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활력 넘치는 도시와 현대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던 반면, 시골은 마치 정지한 듯 거의 변화하지 않던 시대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북부와 시골 농장, 또는 노동자가 많았던 프랑스 남부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던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삭막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어릴 적 고향을 동경하게 되었고 화가들은 이 시대상을 반영하여 여유롭고 낭만적인 시골풍경들을 화폭에 담아 그렸던 것입니다.

     가족의 애정을 담은 전원 풍경 화가, 레르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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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화가 레르미트 역시 전원풍의 농촌풍경과 일하는 시골 농부들의 모습, 그리고 그 가족의 표정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는 프랑스 교외의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 어귀에 있는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에 모여 살며 활동했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나 쿠르베(Gustave Courbet, 프랑스, 1819-77), 코로(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가 활동하던 시기보다는 2-30년 정도 늦은 때에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가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고흐의 동료였던 레르미트도 같은 시대를 살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의 그림을 비롯하여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으면, 앞에서도 함께 감상한 적이 있는 밀레의 '이삭줍기'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되며, 조용하고 풍요로운 풍경을 주로 그렸던 코로(? 앞으로 소개할 계획)의 그림과 영상이 교차되기도 합니다.

▲ 레옹 레르미트의 초상.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프랑스, 1864-1943)의 조각작품,
  1894, Bronze ⓒ 2008 claudel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화가이자 삽화가이기도 한 레르미트는 1844년, 7월 31일에 몽생페어(Mont Saint Pere)의 교장이었던 아버지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여 국가로부터 상을 받았으며, 1863년에는 파리 학교(Petite Ecole)에 입학하여 브와보드랑(Horace Lecoq de Boisbaudran) 밑에서 로댕(Auguste Rodin, 프랑스, 1840-1917)과 함께 그림공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댕의 동료요, 고흐가 좋아했던 화가 레르미트

   전원화가로 분류되는 레르미트는, 1864년 그의 나이 19세에 살롱전(The Salon, 파리에서 해마다 열리던 미술전람회)에서 목탄그림으로 첫 전시회를 갖습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정기적인 전시회를 갖던 그는 각종 상을 받게 되는데, '프랑스 명예의 표창(French Legion of Honour, 1884)'과 '세계 박람회 대상(the Exposition Universelle, Grand Prize, 1889)'을 수여하면서 국제 예술가 협회의 일원과 협회장으로도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동판화(etching)에도 빼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쿠르베 이후 최고의 판화가라는 명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물화에서도 뛰어난 그의 재능은 돋보였습니다. 고흐가 레르미트를 인물화의 대가라고 감탄하기도 하였으며,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네덜란드, 1606-1669)가 만들어낸 빛을, 전원풍의 색채로 바꾸어 창작한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고까지 극찬하였습니다.

   그의 데생 솜씨 또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고흐는 그의 강렬한 그림을 "이상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 Gas, 프랑스, 1834-1917)와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가 무척 좋아했던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숨을 거두었던 1925년까지도 계속하여 프랑스 전원풍의 작품을 창작하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성모 승천>, <햇볕이 비치는 문앞>,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 <랑글루아 드 팔레즈 부인과 딸 모이 드 송 백작부인>, <탕제의 유태여인>, <오래된 항구, 마르세이유>, <포로>, <실레노스의 얼굴을 산딸기로 물들인 에글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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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하는 사람들(The Harvesters), Pastel on paper, 21 5/8 x 16 7/8 inches (55 x 43 cm), Private collection ⓒ 2008 L'hermi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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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Harvest), 77.04 cm (30.33 in.) x 99.06 cm (39 in.), pastel on paper, laid down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레르미트 작품의 전체적인 소재를 보면 위의 그림처럼 농부들의 모습과 전원생활을 담고 있는데, 젊은 시절의 그림에서부터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파스텔이나 유화는 레르미트를 좋아했던 밀레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오늘 감상하는 9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부의 일상에 존엄성을 불어넣은 빛의 아름다움

   특히 그의 작품은 바르비종의 양식 위에 빛을 채워 넣어 농부의 삶에 존엄성과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불어넣고 있으며 시골 풍경에 행복과 기쁨을 더하고 있습니다. 창작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독자(관객)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그의 작품에서 예술가로서의 그의 신념과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위와 아래 모두의 그림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레르미트의 그림은 인상주의의 빛의 효과나 렘브란트의 빛의 색채와는 또 다른 찬란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림에 등장하는 농부나 가족들의 표정은 누구 하나 밝아 보이거나 웃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단한 일상과 표정 뒤에 숨겨져 있는 행복과 풍요로움까지 함께 담아 전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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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생페어의 추수하는 사람들(Moissonneurs a Mont-Saint-Pere), Oil on canvas, 30 1/8 x 38 1/4 inches (76.8 x 97.2 cm), Private collection ⓒ 2008 L'hermitte(오늘의 그림 모두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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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베기 위해 잠을 깨는 중(Le Reveil du Faucheur), Oil on canvas, 1899, 30 5/8 x 39 3/4 inches(78.1 x 101 cm), Private collection ⓒ 2008 L'hermitte



  레르미트는 몽생페어(Mont-Saint-Pere)라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으며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레르미트에게 있어 어릴 적 시골의 풍경과 일상은 그의 전(全) 작품에 있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위 그림과 마찬가지로 시골 풍경을 주로 그렸던 그의 일생의 작품에 배경을 제공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농부의 느슨한 일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섬세한 붓질

   또한 1863년에는 그의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이 때 사귀었던 로댕을 비롯한 많은 친구들과 평생의 우정을 형성하며 영향을 받게 되지만 1864년 등단한 살롱전의 목탄그림에서도 역시 자연에 대한 깊은 감각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유화나 파스텔뿐만 아니라 목탄그림에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런 감각과 경향은 그의 전 작품에서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위 두 그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몸으로 노동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의 일상과 표정이 생생하고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치 현장의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슨해진 그들의 모습과 표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번지며 붓질의 질감이 부드럽고 섬세하여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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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초 만드는 사람들(Haymakers),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2008 L'hermitte (모든 그림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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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줍는 사람들(The Gleaners), Oil on canvas, 1901, Collection of Fred and Sherry Ross ⓒ 2008 L'hermitte



   사실주의 유파의 일원이었던 레르미트는 시골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이는 밀레에게서 가장 깊고도 많은 영향을 받은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바르비종의 양식 위에 빛을 더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의 분위기를 위 두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밀레의 그림이 연상되는 이유입니다.

     밀레의 종교화같은 그림이 떠오르게 만드는 농촌풍경

   고흐는 이런 레르미트의 화풍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래서 위 두 작품을 포함하여 농부들의 삶을 그린 기념비적인 그의 작품에 감탄하기도 하였으며, "또 다른 밀레의 그림"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덧붙여 설명할 필요 없이 보고만 있어도, 실제로 밀레의 "이삭줍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같은 제목을 붙여도 무방할 듯,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질 것입니다.

   논의 벼를 다 벤 뒤, 볏짚으로 한 묶음씩 볏단을 만들고 그 볏단을 쌓아 집 모양으로 볏가리를 만들거나 소달구지에 싣고 있는 뒤쪽의 농부들 모습이 정겹고 역동적입니다. 겨우내 눈비에 젖지 않게 관리하는 우리네 정서와도 닮았습니다. 지평선 위아래의 공간감과 들판의 고요한 시정은 이삭을 줍는 가난한 농민의 고된 노동에 낭만적인 고귀함을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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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초를 만드는 사람들(이삭줍는 사람들, Haymakers), Pastel on paper, 17 1/2 x 13 3/4 inches (44.5 x 35 cm), Private collection ⓒ 2008 L'hermi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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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 줍는 사람들(The Gleaners), 192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2008 L'hermitte



   이 두 그림은 배경과 빛의 효과로 짐작해 볼 때, 풍성하던 황금들판의 벼도 다 베고 그 벤 볏단도 다 정리되었으며, 고단한 일상과 함께 추수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해질 녘의 전형적인 풍경입니다. 노을로 물든 연붉은 빛, 고운 들녘의 전원풍경이 매우 인상적이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인상주의 색채에 현장감을 살린 그만의 거친 붓질

   레르미트는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갖기도 하였으며 초기부터 전통적인 이론에서 벗어나서 야외로 나가 빛의 흐름과 그 오묘한 명암의 색채를 찾아다녔던 인상주의의 통찰력을 받아들였습니다. 앞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위 그림에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의 작품에서 받는 인상적인 빛의 색채와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전 시대의 작품들처럼 부드러운 선을 중시하기보다는 강렬하고 거친 붓의 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가적인 색채에 빛과 그늘이 주는 미묘한 명암의 차이와 분위기를 구별하여 세심하면서도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농부들의 삶과 그 속에 베어있는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벼 한 톨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우리 농촌의 정서와 닮아 있어 더욱 정겹게 다가오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세계 각지 어느 곳이든 농촌의 풍경은 다 비슷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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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La Famille), Oil on canvas, 1908, 100 7/8 x 137 inches (256.5 x 348 cm), Private collection ⓒ 2008 L'hermitte (저작권 시효 말료된 작품들)



   오늘의 이 마지막 그림은 위 모든 그림을 압축해 놓은 정액과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위 모든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작가에게 이미 다 들은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명화에 대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그림이었습니다.

     가족과 삶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일깨우는 풍경화들

   당시 농부들의 모습과 농기구, 늘 식구처럼 함께 생활하는 소의 모습, 그리고 가족의 정겨운 일상이 들녘의 노을진 배경과 더불어 잘 반영되어 있는 숭고한 느낌의 전원풍경입니다. 17세기 선을 중시하던 시대에 사실 그대로를 실제처럼 그리던 정교한 기법으로 위 그림을 묘사하였다면 아마도 그 느낌이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동경하던 낭만적인 향수와 소를 포함한 농부 가족들의 정감어린 모습을 매우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붓의 질감과 노을빛, 그리고 그 명암으로 잘 빚어 표현하였습니다. 추수를 모두 마친 어스름 녘의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전체적인 색채를 통일하여 조용하면서도 질박한 농촌의 일상을 느끼게 합니다. 더불어 가족의 의미와 삶의 목적, 이유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일깨우는 작품입니다.

   방금까지도 젖을 물었던 갓난아이와 엄마 곁에 바싹 다가앉은 어린 소년, 그리고 소를 포함한 여덟 식구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고단해 보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짓게 만듭니다. 더불어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과 단란한 가족의 풍경이 삶에 지친 도시인들의 향수와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바르비종의 양식 위에 빛을 더한 독특한 화풍

   위와 같이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담고 있는 레르미트의 추수풍경은 아름답고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안에 숨겨진 가족들의 삶과 애환까지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들판에 있는 일꾼들의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 외에도 그들의 노동에 현실적인 행복을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강하고 부지런한 시골농부들을 상상하였던 것처럼 그의 그림에는 낭만적인 향수가 가득 베어 있습니다. 이처럼 레르미트도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당시의 도시인들에게 과거 프랑스 남부 시골의 낭만과 산업화 이전의 삶을 생각나게 하는 건장한 모습의 농부들과 정감 넘치는 가족 풍경을 창작하였던 것입니다.

   고흐가 극찬하였던 것처럼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으면 밀레의 부드러운 붓의 질감과 렘브란트의 섬세한 빛과 명암, 그리고 모네의 강렬한 색채와 붓질까지 느낄 수 있으며 함께 연상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같은 느낌은 아니며 바르비종파의 자연주의에 렘브란트의 빛과는 또 다른 레르미트만의 독특한 화풍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 만져본 것처럼 생생한 레르미트의 그림을 감상한 것만으로도 즐겁고 여유로워진 날입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가 농부들보다도 더 성급하게 초여름 밀의 추수와 가을 추수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풍성할 가을 날의 결실만 동경하던 마음에도 묵묵히 땀 흘리는 농군님들의 우직한 모습이 육중하게 눌러 앉았습니다. 마음 벌써 황금 들녘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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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그림 감상잘하고 가요~

  2. 와우..정말 멋진 작품들이네요.. ㅎ

  3. 아름다운 그림들이네요 제 마음에 쏙 들어요

    • 이리나님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잘 지내셨죠?
      마음에 들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냥 가지 마시고, 바탕그림으로라도 담아가시지 그려셨어요...
      앞으로는 더 자주자주 뵈요~~

  4. 전체적으로 작품들이 부드럽고 편안하네요. 레르미트라는 분은 자상하고 순하신 분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87년 6월...저는 그때 중3 '똘망똘망'한 학생이었는데요, 집에가는 길에 마주치던 그 검은제복의 경찰아저씨들과 피땀을 흘리며 투석전을 벌이던 형들, 누나들의 모습이 가끔 희미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최루탄의 그 매콤한 향기'까지도요...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요즘이 21년전 그때인가 착각하게 되네요...쩝.

    • 한상천님, 요즘 종종 뵐 수 있어 제가 더 반갑습니다.
      레르미트의 자연주의적인 감성이 느껴지지요.
      저도 매캐하던 냄새의 학교 앞 시위 현장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 날들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데, 세월은 흘러도 역사의 현실은 그대로인 듯 합니다. 쩝!

  5. 오랜만에 들렀어요.
    오늘 시간이 나서 리움에 들러볼까 합니다.^^
    이 그림 보니까 자꾸 밀레가 생각나네요. 농경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모두 정겨워서 참 좋아요.

    • 아도니스님, 잘 지내셨죠?
      저도 오랜만에 뵈니, 더 반갑습니다.
      어제 리움에 다녀오셨군요. 그 감상 후기가 더 궁금합니다.
      아마도 용산 어디 근처에 사시거나 근무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