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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6월 22일, 일요일로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였습니다. 오늘은 6월 23일, 월요일이니, 이틀 뒤면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인 한국전쟁 58주년 기념일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에게 "광복"이란 의미는, 100년 전 즈음인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빼앗긴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뒤 200만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던 1919년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35년간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습니다.

     주권을 빼앗긴 역사는 또 다시 한국 전쟁으로 

   그러던 1941년 12월에 시작된 제 2차 세계대전은, 1943년 들어 연합국의 우세가 확실해졌습니다. 이렇듯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 패하여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날까지에 대해서 적용되는 반일 민족독립의 사상과 운동, 관념을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1945년 8월 6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9일 얄타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대일 선전포고를 한데 이어, 38선 전역을 점령하였고,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미국이 38선 분할안을 제기하였습니다. 사흘 뒤인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였으며, 마침내 한반도는 자유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러시아가 나누어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주권을 빼앗긴 한번의 역사는 5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로 다시 드리웁니다. 이는 반 세기가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같은 이념 논쟁이나 총기난사 사건으로 그 관련 가족과 온 국민이 오열하였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주변의 현실과 잔영으로 따라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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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숍(Werner Bischof)의 홈페이지에서 관리되고 있는 그의 초상 사진 ⓒ 2008 Bischof


 
   이러한 현실이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들도 그런 우리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실감나게 담아낸 보도사진가(photo journalist),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Swiss, 1916-1954)의 전쟁 관련사진 9점입니다. 바로 58년전 오늘, 비숍의 눈을 통해 본 전쟁 관련 사진들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그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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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숍의 사진에는 자연에서는 담아낼 수 없는 그만의 감성과 애정어런 아름다움이 오롯이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한 그의 사진에는 인간의 내면을 읽어 표현해주는 독특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래 작가의 사진들을 귀 기울여 감상하고 있으면, 전쟁 당시의 실감나는 상황과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들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관련 사진집도 이미 8권이나 출판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들에 비하면 작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의 개인 누리방에 붙여져 있는 설명조차도 남쪽과 북쪽을 바꾸어 달아 놓았거나 지명을 잘못 표기하는 등, 지금도 바르게 관리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음을 밝혀둡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비숍과 관련한 글을 이미 세 번(아래 비숍 관련글로 링크)이나 실었고, 이 한국전쟁 사진 관련 글이 벌써 네 번째입니다. 그러므로 작가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약력은 그 글들을 더 참조하시고, 오늘은 전쟁과 관련한 그의 저널리즘과 세계적인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며, 사진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용기있는 사랑으로 철학적인 나눔을 실천했던 비숍

   스위스의 사진가, 비숍은 1916년에 쮜리히(Zürich)에서 태어났습니다. 1932-6년까지 그 곳에서 예술과 기술공부도 했으며, 1942년 광고사진 작업실을 열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쮜리히를 중심으로 한 풍경사진이나 조형미를 강조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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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황폐와 식민주의의 해체, 냉전이라는 격동의 세계를 맞으면서 예술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던 비숍은 인간과 제 문제에 대한 열정적인 기록자, 살아 숨쉬는 현장을 전달하는 보도사진가로서의 변신을 꾀합니다.

   실제로 1945년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찍어 유럽의 전쟁참상을 보도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또한 1948년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평가에 있어서도 대호평을 받았습니다.

      ▲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한 비숍의 자화상(Self-portrait of Werner BISCHOF
                                   in his studio), SWITZERLAND, Zurich, 1940.  ⓒ 2008 Bischof

    그는 슬픔을 담은 인간의 얼굴에서부터 활력 있는 인간의 정신까지 담아냈던 것입니다. 또한 전쟁과 기아의 상흔에서부터 전통문화의 단순한 진정성에 이르기까지, 비숍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을 용기있는 사랑과 철학적인 시선으로 기록해 보도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진이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인도의 참상을 보도함으로써 국제적인 무상지원이라는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서른여덟 해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사진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지켜 실천했던 예술가였습니다.

     38세의 이른 나이, 안데스에서 사진에 대한 열정을 거둔 비숍 

   1949년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보도사진가 단체 "매그넘포도(Magnum Photos, 세계대전과 9. 11 사태를 비롯하여 세계의 사건들을 보도하는 사진가들의 모임)"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951년 라이프지의 일로 인도에 가서 민중의 기근을 촬영했는데, 이것이 미의회를 움직여 대량의 밀가루를 인도의 기근을 위해 보내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때부터 그의 시선은 민중의 일상 속으로 철저히 파고 듭니다. 처음 소개했던 노동자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나 오늘 사진들과 같이 전쟁의 잔혹한 실체와 적나라한 현실을 독자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국제적인 구호활동을 선도하게 됩니다. 1952년에는 한국에 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사진이 오늘 소개하는 바로 아래 작품들입니다.

   아메리카 대륙, 멕시코를 취재하고 칠레를 거쳐 페루를 여행하던 가운데 1954년 5월 16일, 안데스의 한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불행하게도 큰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치료 받던 가운데 며칠 후인 5월 24일, 마침내 그의 나이 겨우 38세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사진에 대한 젊은 열정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흑백사진으로 표현된 비숍의 예술적 재능은 정평이 나있는데, 사건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에 와서도 그의 작품들은 "조형적인 바탕 위에 국제적인 감각과 시인적인 감성이 고도로 융합되어 있다"는 극찬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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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을 취재나온 국제 보도사진 기자들(Kaesong, International Press photographers covering the Korean War) ⓒ 2008 Bischof


  
     기자들의 사실적인 모습과 카메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사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개성에 취재나와 있던 국제 보도사진 기자들의 모습입니다. 한국전쟁의 실상이 실제로 알려졌던 내용과 짐작하거나 상상했던 것에 비교하면 기자들의 숫자도 상당히 많으며, 모두 한결같이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어 같은 학교 학생들인 것처럼 그 표정도 닮아 보입니다.

   또한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주의해 살펴 보면, 불과 50여 년 전의 사진기들인데도 그 크기와 모양이 무슨 무기라도 되는 양, 그 크기가 놀랍도록 크기도 하고 또 작기도 하지만, 무척 이색적이며 그 모양도 참 다채롭습니다. 비록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이처럼 사진기의 기종과 그 변천사도 엿볼 수 있어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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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에 설치된 유엔 재교육 캠프(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2008 Bischof



     남북 모두 전쟁의 포로요, 피해자들임을 설명해주는 사진

   한국전쟁에 대한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남북 모두 전쟁 포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남쪽을 점령하고 있던 유엔(U.N.)이 정치적 적응과정을 위해,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재교육하고 있는 거제도 막사 안의 모습입니다.

   예상보다 큰 건물이지만 허술해 보이며 그 안데 빼곡히 들어 안아있는 모습이 숨을 쉬기도 어려워보입니다.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뒷 모습의 교육자는 팔동작조차 힘있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형체만 보이는 수많은 포로들의 고정된 시선과 구부정한 앞 모습이 참 대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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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유엔 재교육 캠프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포로들(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prisoners waiting for medical treatment) ⓒ 2008 Bischof



     외상이 아닌 마음과 정신에 더 큰 상처를 받은 전쟁 포로들

   역시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위한 거제도에 있던 재교육 막사 안의 정경입니다. 북쪽 포로들이 잠자리 용으로 지급된 듯한 얇은 담요를 모두 똑같이 뒤집어 쓴 채, 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깊은 주름과 포기한 듯한 시선으로 포로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화면의 앞쪽을 어둡고 무겁게 처리한 안정된 구도로 주인공들의 내면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관객)를 직시하고 있는는 포로들의 주름진 표정과 살아있는 눈동자를 통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전쟁에 대한 반항(반대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보고있는 독자에게도 그 섬뜩함이 전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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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북한 포로들을 위한 캠프(Island of Koje Do,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2008 Bischof



     막사 안의 사람 냄새나는 정경을 정겹게 묘사한 사진

   이 사진 역시 한국전쟁 당시 북한포로들을 가두어 두고 재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지어놓은 거제도 막사 안 풍경입니다. 담장을 대신하여 쳐진 가시가 돋은 철망이 허술해 보이며, 그 철조망 사이로 모자를 쓴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철조망에 널어 놓은 빨래의 실루엣 사이로 보이는 영상이 정겹기도 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가두어둔 그 철조망 위에 옹기종기 널어놓고 따스한 햇볕에 말려 둔 빨래(세탁물)들이 참 정겹고 전쟁 상황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휴전은 위도 38도선을 따라 한국을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 분단시켜 놓았지만, 철조망과 그 위에 얹어놓은 빨래 사진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마저 단절해놓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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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북한 포로들을 위한 캠프(Island of Koje,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2008 Bischof



     생동감과 자유로움이 살아있는 전쟁 보도사진

   1950-53년 사이에, 남한을 돕기 위해 연합국이 결성되었으며, 중국이 북한을 도우러 왔었던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북한 쪽 내부 모습입니다. 큰 자유의 여신상 앞, 광장에서 포로들이 사각으로 돌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훈련을 받으며 운동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철조망 안에 있는 포로 수용소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지만, 그 앞에서 가면을 쓴 채 춤을 추게 된 포로들의 모습과 동작이 재미있다기 보다는 애처럽게 다가옵니다. 화면 안의 상황은 운동의 연장이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보이나 주인공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고 구성도 자유롭게 묘사되어 서럽도록 아름답게 가슴에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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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리 마을 사람(Village of San Jang Ri) ⓒ 2008 Bischof



     극적 구성으로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진

   남한과 북한 사이의 최전선에 위치한 상장리 마을에서 비숍이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어둡고 비좁은 방 구석에 아파서 누워있는 한 남자의 모습과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 아들의 안타까운 표정만으로도 전쟁의 상처와 고통이 고스란히 실감나게 전해져오는 작품입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시선을 잡아 끄는 구도입니다. 화면 앞 쪽 아래를 어두운 방으로 배치하였으며, 오른 쪽 위 사선으로 창 같은 작은 문을, 그리고 그 작은 문 안에 왼 쪽 손을 짚고 바라보는 소년을 그 문의 오른쪽으로 몰아 구성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왼 쪽 가운데 윗 부분 밖에서 오른 쪽 사선으로 비춰들어오는 빛을 잘 활용한 작품입니다. 마치 사선으로 떨어지는 빛을 조명으로 연출한 것처럼 밝고 환하게 담아냄으로써 많은 이야기와 희망적인 미래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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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가장 어린 포로(구성원)(Island of Koje, The youngest member) ⓒ 2008 Bischof



     전쟁의 뒷 면과 숨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역시 거제도의 북쪽 포로들을 위한 수용소입니다. 앞 왼 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다른 인물들은 전체적인 윤곽만으로 마치 배경인 양, 형체만 실루엣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나이 많은 동료들과 똑 같은 모양의 군복을 입은 여섯 내지 일곱 살 가량의 주인공인 소년은 정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경의 포로들과는 대조적으로 자기 몫으로 배급된 제 체격에 비해 제법 많아 보이는 양의 국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챙겨 받아 들고 있는 천진난만한 모습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으며, 예기치도 못한 이런 상항에서 뒷 쪽의 수많은 포로들의 뒷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어린이의 앞 모습과 표정은 비교적 맑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린이의 순수한 모습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 뿐만 아니라, 휴전과 냉전의 뒷 모습과 단면에 대한 단호한 주장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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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쟁 당시, 부산 근처의 시내(Town of Pusan during the Korean War) ⓒ 2008 Bischof



     한국전쟁의 고통과 그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

   1952년에 한국전쟁 당시 비숍이 부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전쟁 동안 한국의 수도는 부산으로 남하하였습니다. 제한된 세계인 답답한 공간 안에 가둬진 듯, 길거리 양지 바른 구석에 모여있는 고아로 보이는 세 소년의 꼬질꼬질한 모습과 각기 다양한 표정을 몸서리쳐지도록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누추하고 허름해 보이는 차림의 아이들은 추위에 대한 공포와 현실에 대한 고통으로 한결같이 울상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맨 앞 쪽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불확실한 표정을 통하여 그 당시의 상황과 두려움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비숍은 한국전쟁 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아시아의 어린이들도 이런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이전에 비숍이 찍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생겨난 유럽의 고아들과도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주요 주제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힘주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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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유엔 재교육 캠프(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2008 Bischof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이 사진도 마찬가지로, 유엔이 중국과 북한 포로들을 재교육하는 수용소와 그 수용소를 지키며 보초를 서고 있는 막사의 풍경 일부입니다. 그 막사를 배경으로 저녁 햇살이 떨어고 있으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찬거리로 보이는 것들을 묶어 머리에 인 채, 그 곁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인근 마을 주민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대조적으로 묘사한 영상입니다.

   산새와 3층 높이의 초소를 뒷배경으로 배치한 구도, 전체적인 윤곽과 실루엣, 그 실루엣을 비추는 빛의 처리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저녁 어스름 집으로 향하는 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흑색으로 어둡게 강조하여 표현되어 무척 푸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대조적인 풍경이 서로 현존한다는 사실이 더욱 서럽고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입니다. 전쟁 가운데에서도 가족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모성애를 발휘하는 어머니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어 보면 볼수록 가슴과 기억에 오래오래 남게 되는 작품입니다.

     고통스런 인간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비숍의 작품들

   이렇듯, 비숍은 다양한 보도사진들을 통하여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 내부에 숨겨진 고통의 진실과 전쟁의 참상을 소리높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전쟁은 슬픔과 고통 뿐만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희망과 아름다움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사진의 역사에 이름을 일찍 올렸으나 앞에서 소개한 여러 작품들에서도 확인하였던 것처럼, "인간의 고통스런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살아 남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후대들도 그렇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사망한 이튿날인 1954년 5월 25일에 로버트 카파(Robert Capa, 헝가리, 1913-1954)도 불인전선에서 지뢰를 잘못 밟아 사망하였습니다. 카파가 철저히 대상의 현실성을 냉엄하게 표현했던 반면, 비숍은 종교적 평화주의자처럼 이기고 진 나라에 상관없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실상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슴으로 사진에 담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작품 활동 초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로 표현했으나, 각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그의 눈과 관심을 현실적인 세계로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민중의 생활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적인 기쁨과 슬픔을 몸소 느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위의 전쟁의 현실과 그 진실을 그대로 전해주는 베르너 비숍의 작품들을 감상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광복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다시는 온 누리에 이렇게 가슴시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디지털 화면의 제한으로 비숍의 더 많은 전쟁사진들을 다 감상할 수 없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세계전쟁 사진을 다음 연재기사로 한번 더 함께 감상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합니다.
   

** 비숍사진 관련 글 **  ★ 여행을 재촉하는, 서정 깊은 풍경사진 - 비숍 사망 54주년 기념
                                  ★ 비교감상, 비숍과 밀레의 전원풍경은 어떻게 닮았을까
                                  ★ 일상, 그 아름다움과 희망을 포착한 비숍의 사진들


Posted by 초하(初夏)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국 전쟁'....
    '사변'이라는 괴상한 단어로 이념과 이념이 충돌한 분명한 '전쟁'을 묘사하곤 했었죠.
    여전히 6.25 사변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긴 합니다만....
    그림을 보니 참 슬프군요. 특히 자유의 여신상이요.... ㅋ
    음.... 다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꺼내 읽고 싶어집니다.

    • 쌀국수님, 저도 태백산맥 전권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한국전쟁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

  2. 사진으로 보고나니.. 얼마나 슬픈 전쟁이엇는지.. 알수 잇겟네요.

    • jyudo 님 말씀처럼, 학생들에게 교과서 같은 길잡이로 도움이 될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산 증인이 되는 중요한 의미도 있구요.
      작품성에서도 어느 것에서 결코 빠지지도 않구요.

  3. '사진'으로만보면 더할수없이 좋습니다.
    하지만...그 내용을 보면 우리 땅에서 일어난 참혹한 전쟁상황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면 아..좋다라고 말할 수 없기도 합니다.
    저는 삼국지나 우리 삼국시대를 배경으로한 전쟁소설을 즐겨보는데요, 어릴땐 마냥 재밌게만 봤는데 요즘은 그 전쟁을 수행한 힘없고 죄없는 그 시대의 젊은 아버지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전쟁터에 끌려가야하는 젊은 아버지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치료를 기다리는 포로들'의 눈빛이 가슴을 짠하게 하네요.

    • 상천님의 댓글에 참 많은 공감을 합니다.
      이런 역사의 진실을 담아두고 후대에 전해준 비숍의 집념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그의 실천과 평화정신이 존경스럽고 감사하구요.
      좋은 감상 적어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 오늘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날이군요
    전쟁은 참혹한 것입니다.
    저의 오라버니도 6.25 발발 다음날 6월 26일 옹진 전투에서 꽃다운 20세에 사망했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참상을 생생이 기록에 남긴 사람이 있어 후세 사람이 조금은 느낄까요?

    • 우록님이 여자분이셨군요??
      이렇듯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삼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이 모든 진실의 되새김도 비숍을 통해 가능했으므로, 후세에 적쟎은 영향을 미쳤음은 확실하지요...?? 또 느낄 것이라 확신합니다.

  5. 역시 초하님도 6.25에 맞춰 관련 글을 올리셨군요. 덕분의 비숍의 사진들을 통해 한국전쟁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6.25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추천하는 글을 하나 썼는데, 엮고 갑니다.

  6. 저의 집은 광주 산곡마을에 있기 때문에 친척 30여분이 저의집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아침은 밥 점심 저녁은 죽을 쑤어 먹었답니다.
    1.4 후퇴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남의 집 방한칸을 얻어살았습니다.거기 범일동에서 이북포로수용소가 있어 포로들을 보았습니다.
    포로들은 양식이 싫어 단 밥이 먹고 싶어 비누 과자 쵸코렛을 들고 떡으로 바꿔갔습니다.
    제머리속에도 한국 동란의 사진이 있습니다. 비숍의 사진을 보니6.25 비참함이 연상됩니다.
    전쟁 고아 남편 잃은 젊은 아낙 불행 했던 그 시절

    • 우록님의 글들 모두 구구절절이 현실처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히려 제 글이 그 어려운 기억들을 되살려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사실 저는 그 전쟁을 겪지 못하고 말로만, 이런 기록으로만 전해 듣고 알고 경험한 세대여서 현실감이 덜한 것이 사실인 듯 합니다. 이렇게라도 되새김 하는 것이 도리인 듯 하여 참여하고자 노력했구요.
      다시 한번, 그 고통에 늦은 조의를 표하며, 아픈 우리 역사에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또한 지금의 우리네 허술한 역사인식과 미흡한 자기 성찰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크므로 마음 깊은 때늦은 반성을 해봅니다.
      하지만, 오늘 주말로 가는 금요일은 좋은 날되시길 바랍니다~~

  7. 신이 내린 가장 심한 저주가 전쟁이 아닌가 합니다. 쓰나미, 지진, 태풍은 신이 내린 벌이라 쳐도 신 마저 포기하고 인간이 인간을 죽게 만든 것이 전쟁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인간에게 경고를 하는데도 무지한 우린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푸른 유월에...

    • 나무님의 말씀 모두 전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자연재해는 전쟁의 고통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전쟁은 더 잔인하며,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점에서 그 횡포와 가혹함은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이 푸르고 맑고 화창한 유월에 말입니다. ^^
      유월의 마지막 금욜입니다. 좋은 일 가득하시길~~

  8. 종군 사진 기자는 로버트 카퍼외에는 잘 모르고 있었는 데, 베르너 비숍은 카퍼와는 다른 스타일로 전쟁을 비추고 있었군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키치너님, 반갑고 감사의 댓글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위 맨 첫 사진에서도 보듯이 한국전쟁에도 상상보다도 상당히 많은 종군기자들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지요. 그 사진작품들을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확인할 수 없을 뿐이지요.
      카파의 사진도 사실 소개하고 싶은데, 아직 저작권이 그에게 유효한 상황이라서 허락을 받지 않으면 싣기 어렵습니다. 조금 많이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
      앞으로도 종종 놀러오시고, 안부 들으며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9. 트랙백 감사합니다~ 그냥 글만 적었는데...

    사진들을 보니 역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것을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이유든 말이지요...

  10.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언젠가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오겠지요.

    • mu 님, 정말로 반갑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가셨다니, 어느 정도는 공감을 나눈 것 같아 저도 고맙습니다.
      인간의 과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의 아픔이나 상처는 온전히 아물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살아나지 않기를 빌며...